[古寺의 향기]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 다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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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 다보사
  • 관리자
  • 승인 2007.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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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의 향기

 겨울볕의 따사로움을 좇아 줄곧 달려 온 나주 다보사. 90년 새해의  힘찬  첫  발걸음을 고요함과  맑은 내음으로 더욱 새롭게 다보사는 설레게 한다.

 선사시대  때부터 취락을 이루었던 고읍 나주.

 나주는 삼한시대 마한에 속한 불미지국으로 백제 초엔 발라국으로 후엔 통의군이라 이름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통일신라 때는 고을 이름을 금산군이라 개칭하고, 고려 태조때는 나주라 이름하였으머 당시 광주를 능가하는 세를 지녀 현종이 거란의 난을 피해 몽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읍 나주에서 북으로 오리 거리에는 다보사를 안고 있는 금성산이 있다.

 이 곳 금성산에는  고려 왕건군의 요새지가 있어 견훤군이 무등산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하였다 한다. 이에 금성 군민들은 양군의 격전이 벌어질 것을 짐작하고 모두 금성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이때 오다린이란 사람은 `피난을 가더라도 식량만은 남기지 말고 모두 가지고가야 한다`는 말을 퍼트려 결국엔 이 식량이 금성산에 있던 왕건군의 군량미가 되어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정도전은 "금성산은 단중하고 기위하여 동북에 웅거하였으니 나주의 진산이다"라고 그의 소재동기에, "신령스러운 멧부리 매우 높다. 깊숙한 골짜기에 호랑이가 일찌기 돌을 차고갔고, 옛 못에는 용이 또한 구슬을 안고 조는데 달밤에는 뭇 신선이 내려온다. 하도 높아 하늘과의 거리가 겨우 일악이다. 솔숲 절 저녁 종소리 깊은 골짜기에 전하고 버드나무 마을 쓸쓸한 방아 소리 외로운 연기에 격했는데, 조도가 위로 꾸불꾸불이어졌네"라고 김극기는 그의 사인 강남락에 각각 금성산을 노래하였다.

 또한 나주 지방에서 고려 태조의 후취 왕후가 난 까닭에 윤소종은 "금성산은 바다 남쪽 태사의 고장 오백년이로다. 한 척의 배로 견왕이 귀순한 길이요, 일만 깃발 현종의 출사했던 곳이라네... 태조의 누선을 여기에 맞았으니,동정하는 오늘날 생각 그지 없어라" 라고하여 주나라의 문왕 왕비인 태사의 덕이 높아 지금까지 이름이 전함을 생각하고,고읍나주에서 왕후가 남을 그의 시에 기리고 있다.

 옛 부터 많은 대덕들이 선경이라 노닐던 이곳 금성산에 자리한 다보사는 한결 그 풍취를 더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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