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륜성왕을 꿈꾼 광개토왕] 광개토태왕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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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을 꿈꾼 광개토왕] 광개토태왕과 불교
  • 조경철
  • 승인 2024.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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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태왕永樂太王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광개토태왕릉비.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비석이다. 장수왕이 건립했다.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광개토태왕은 고구려를 대표하는 정복 군주로 많이 알려졌다. 광개토태왕과 불교의 연관성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광개토태왕릉비에 불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광개토태왕 때 불교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광개토태왕 때 불교는 생각보다 활발히 전개됐다. 그는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란 교서를 내렸고 평양에 9개의 절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요동(遼東) 지역에 육왕탑(育王塔)을 세웠다. 고구려 사람들은 그를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에 빗대 성왕(聖王)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또한 능비에 적힌 ‘영락(永樂)’도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 광개토태왕의 연호가 영락이고 광개토태왕을 ‘영락태왕(永樂太王)’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그의 불교적 면모가 남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광개토‘대왕’ 대신 능비에 나오는 용례에 따라 ‘태왕’이란 칭호를 쓴다.

 

고구려의 불교 수용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동아시아의 격동기였다. 중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쪽에서는 5호 16국으로 갈라져 있던 나라가 전진(前秦)으로 통일돼 가던 시기였다.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전연(前燕)은 370년 전진에 멸망당했다. 전진이 중국의 북쪽을 통일해 가는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자 고구려는 전진과 새롭게 관계 개선할 필요가 생겼다.

고구려의 국내 사정도 심각했다. 백제와 공방전을 펼치던 고국원왕(재위 331~371)이 371년 10월 23일 백제군의 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전사했다. 고구려의 왕들 가운데 죽은 날짜를 구체적으로 남긴 왕은 고국원왕이 유일하다. 그만큼 고구려인들에게 고국원왕의 전사는 뼈저린 아픔이었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재위 371~384)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전사로 침체에 빠진 고구려의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소수림왕은 372년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같은 해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남쪽의 동진(東晉)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신라도 381년 전진에 사신을 보내 중국의 동향을 살폈다. 북쪽을 통일한 전진은 통일을 이루고자 남쪽의 동진과 싸웠다. 그러나 383년 비수(淝水)의 전투에서 예상을 뒤엎고 참패했다. 이에 백제는 신속하게 384년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자국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정세에 관심을 가졌고 그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를 수용했다.

372년 전진에서 순도(順道) 스님이 고구려에 왔고 374년에는 동진에서 아도(阿道) 스님이 왔다. 고구려는 북쪽의 전진은 물론 남쪽의 동진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375년 고구려는 국적이 다른 두 승려를 위해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짓고 둘을 각각 머무르게 했다.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고국양왕(재위 384~390, 혹은 391) 때는 이렇다 할 불교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고국양왕 말년인 392년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는 숭신불법구복(崇信佛法求福)이란 교서를 내렸다고 하는데 그대로 믿기 어렵다. 

광개토태왕릉비에 의하면 392년은 광개토태왕이 다스리던 시기다. 광개토태왕이 왕위에 오른 해는 390년 또는 391년이다. 고국양왕이 죽은 해도 390년 또는 391년이 된다. 따라서 392년 ‘숭신불법구복’이란 교서는 고국양왕 때가 아니라 광개토태왕 때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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