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륜성왕을 꿈꾼 광개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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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을 꿈꾼 광개토왕
  • 김남수
  • 승인 2024.03.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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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 있는 호로고루성 입구에는 북한이 2002년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남한에 선물한 실물 크기의 모형 광개토태왕릉비가 서 있다. 사진 유동영

“아육왕의 보탑(寶塔)은 속세 곳곳에 세워져
비에 젖고 구름에 묻히고 이끼마저 아롱졌다
생각건대, 그때 길을 지나던 눈 중에
몇 사람이나 이 신성한 무덤을 가리켰을까”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이 요동에 있던 「요동성 육왕탑(遼東城 育王塔)」의 글을 마무리 지으며 칭송한 글이다. 고려(고구려를 일컫는다)의 성왕이 요동성을 순시하다 신이한 체험을 하고, 그곳에 7층 목탑을 세웠다 한다. 일연 스님은 ‘성왕’이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제, 즉 주몽은 아니라 한다. 그럼 누구일까?

연구자들은 광개토왕으로 추정한다. 광개토왕을 일컫는 말로 광개토대왕, 광개토태왕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영락태왕(永樂太王), 호태성왕(好太聖王)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영락은 ‘영원한 즐거움’을 뜻하는 불교적 의미를 지녔고, 성왕은 불교의 전륜성왕을 일컫는 말이다.

광개토왕은 우리나라 역사 최고의 정복군주다. 압록강 변에 세워진 능비의 크기는 왕의 업적과 위상을 보여준다. 정복군주인 광개토왕은 어째서 전륜성왕으로 불렸을까? ‘영락(永樂)’은 광개토왕의 연호였고, 광개토왕은 요동에 탑을 세우고 평양에 9개의 사찰을 세웠다. 광개토왕이 평양에 사찰을 세우고, 그의 아들인 장수왕은 압록강 변에 있었던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때 최대 영토를 차지했다.

정복군주로만 알려진 광개토왕. 전륜성왕을 닮고자 했던 왕, 광개토왕을 찾아 떠나보자.

015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이 모형 광개토태왕릉비를 연천군에 기증했다. 비문의 글씨는 또렷하게 드러나 탁본에 비해 내용 파악이 쉽다. 다만 비의 자리가 큰 건물 바로 앞이라 아쉽다. 사진 유동영<br>
015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이 모형 광개토태왕릉비를 연천군에 기증했다. 비문의 글씨는 또렷하게 드러나 탁본에 비해 내용 파악이 쉽다. 다만 비의 자리가 큰 건물 바로 앞이라 아쉽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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