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가하기 위해 은사스님이 소개한 대로 해인사 강주 법진 스님을 찾았을 때 강주스님이 내게 말했다. “출가는 일생에 한번 해볼 만한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출가하면 잔재미는 없습니다. 세속인에게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만들어 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출가자에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죠?”
잔재미에 대한 기대는 추호도 없었지만, 그 말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출가한 내게도 잔재미가 쏠쏠하게 있었으니, 그것은 차 마시는 것이었다. 불광사에서 살 때 옆방 스님들과 차 한잔 마시면서 담소 나누는 것이 참 좋았고, 동명사에서는 아침 공양 후 대중스님들이 모두 모여 차 한잔하는 맛이 기가 막혔다. 중앙승가대에서 입승 소임을 볼 때도 도반스님들이나 아랫반 스님들이 찾아오면 차 한잔 대접하며 담소 나누는 것이 더없는 재미였다. 차 마시는 것은 술 마시는 것처럼 2차, 3차 이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동국대 선학과에서 종강 모임을 한 후에는 장소를 바꿔가며 3차까지 차를 마신 적도 있다. 그러나 옛 선사들이 차를 소재로 쓴 시를 보니, 선사들에게 차는 단순한 잔재미가 아니라 엄청난 풍류요, 필수적인 화두였으며,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름다움이었고, 무엇보다도 시였다. 금강선원의 혜거 스님은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스님의 『영가집』을 강의하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시를 따라갈 풍류는 없다”라고 말했다. 옛 선사들의 시를 읽으니, 차가 있는 곳에 시가 있었고, 시가 있는 곳에 차가 있었다.
다반사(茶飯事)가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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