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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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 백승권
  • 승인 2021.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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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붓다의 글쓰기’란 상상

평소 강의를 다니면서 글쓰기 과정이 불교의 주요 개념과 상당히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삼혜[문사수(聞思修)], 사성제[고집멸도(苦集滅道)], 오온[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 팔불중도[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상(不常), 부단(不斷), 불일(不一), 불이(不二), 불래(不來), 불출(不出)] 등. 이런 얘길 아는 스님과 주변 불자들한테 했더니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얘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사 승가대학에서 강의하게 됐다. 이후 동국대 경주캠퍼스, 조계종 교육원 강의까지 맡게 됐다. 아주 가깝게 마음을 나누는 어느 스님은 스님을 위한 말하기·글쓰기 책을 함께 내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광주의 한 사찰에서 ‘붓다의 글쓰기’란 제목으로 강연하게 됐다. 주최 측이 강연 홍보물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한 불교 활동가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붓다께서 글을 쓰셨다니, 그런 걸 다 가르쳐줘요? 대단한데요.’ 붓다가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활동가인들 왜 몰랐겠는가. 아마도 붓다가 글도 쓰지 않았는데, ‘붓다의 글쓰기’라고 제목을 붙인 데 대한 황당함과 거부감을 이렇게 표현한 듯싶다. 

맞다. 붓다는 제자들을 통해 팔만 사천 법문을 남겼지만 단 한 글자도 당신이 직접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당시 문자가 없었던 것은 아닌 듯싶다. 『부처님의 생애』(조계종 출판사) ‘제1장 탄생과 성장’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서북쪽 멀리 간다라의 딱까실라에서 언어학자이자 문법학자인 삽바밋따를 초청해 웨다와 아울러 여섯 개의 보조 학문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태자는 위슈와미뜨라와 삽바밋따로부터 리그웨다·삼마웨다·야주르웨다는 물론 웨다의 부속학문인 음운·제례·문법·어원·발성과 천문학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또한 정통 바라문들의 학문에 만족하지 않고 니간타를 비롯한 외도의 사상도 배우고 64종의 문자를 익혔으며, 수학·신화·서사시·경제학·정치학·수사학·논리학을 배우고….”

붓다는 문자, 언어와 관련해 당시 배울 수 있는 최고 교육을 받은 게 분명하다. 이렇게 문자, 언어의 세계에 해박한 지식과 높은 안목을 가진 분이 정각 이후 49년 넘게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말로 전했지만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이 사실은 여러모로 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붓다의 고민, 말과 글의 차이   

필자가 아는 한, 붓다가 글을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경전 구절은 없는 듯싶다. 다만 붓다가 정각을 이룬 뒤 맞이하게 된 상황을 추론해보면 글을 쓰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 붓다는 정각을 이룬 뒤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범천의 간곡한 설득을 받고서야 전법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그것으로 붓다의 고민이 풀렸던 건 아니다. 소통은 결국 언어로 할 수밖에 없는데 언어는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과 글은 조금 다른 특성을 갖고 작용하게 된다. 말은 그 말을 주고받는 특수한 상황적 맥락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멀쩡한 사람을 만나면 ‘애기똥풀은 독성이 있으니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다친 사람을 만나면 ‘애기똥풀을 먹어야 진통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응병여약(應病與藥)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러나 그 말을 글로 기록하면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글은 특수한 상황적 맥락을 모두 반영하기 어렵기에 개별 상황이 갖는 보편 원리를 추구하게 된다. 결국 다양한 상황적 맥락이 거세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 ‘애기똥풀을 먹어도 된다’ 혹은 ‘먹으면 안 된다’라고 쓰면 어떤 경우엔 유용하겠지만 다른 경우엔 위험할 수 있다.

나가르주나의 『중론송』은 말과 글, 모두의 한계를 철저히 드러낸다. 언어는 결국 관념의 산물인데, 관념이 허상이듯 언어도 허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귀류 논증의 방법으로 논파한다. 귀류 논증의 방법을 택한 것은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정의하면 개구즉착(開口卽錯)의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이것은 저것이 아니다’를 모든 경우의 수에 적용하는 것이다. 

붓다는 언어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전법을 하려면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글보다는 말이 언어의 한계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붓다가 비유와 상징(지금으로 말하면 스토리텔링)을 많이 활용한 것 또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일지 모른다. 

아마도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이 고정된 활자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있는 말로 탄생하길 희망했는지 모른다. 밑바닥에 담긴 뜻과 지혜를 제자들이 체화한 다음, 그들이 맞이하게 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면서 말이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섬으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아라’라고 유언을 남긴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붓다 입멸 이후 수백 년이 지나자 붓다의 말은 엄청난 분량의 경전으로 기록돼 팔만 사천 법문의 대장경을 이루게 된다. 아마도 종교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경전 텍스트를 소유한 것이 불교 아닌가 싶다. 선불교로 넘어오면서 다시 경전 텍스트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교를 침묵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선불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절에 가면 곳곳에 묵언 팻말이 붙어 있고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염화미소(拈華微笑) 등이 불교를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됐다. 

 

말과 글, 화쟁의 과정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4권 정도 썼다. 한 권의 책은 수천 명, 수만 명의 독자에게 널리 퍼진다. 한 번의 강의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 정도의 청중들에게 직접 전해진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과 말의 차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책을 읽었을 땐 모호했던 내용이 강의를 들으니 명확해졌다거나, 강의를 들을 땐 중구난방으로 기억됐던 내용이 책을 읽으니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는 등의 반응을 심심찮게 마주한다.

저자는 독자의 표정을 만날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같은 글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강사는 청중의 표정을 실시간 만나게 되니 사람마다 다른 말을 들려줄 수밖에 없다. 책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전략에 따라, 강의는 청중이 듣고자 하는 선호와 반응에 따라 내용이 선택되고 배열된다. 

책이 강의를 만들고 강의가 책을 만든다. 글이 말을 만들고 말이 글을 만든다. 책과 강의, 글과 말이 서로 당기고 길항하는 지점에서 콘텐츠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이 당김과 길항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한 균형을 이루길 소망한다.

도법 스님에게 ‘붓다의 글쓰기’란 강연 제목에 얽힌 얘기를 꺼내며 물었다.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말이 곧 글입니다. 붓다는 말에 대해 이런 원칙이 있었습니다. ‘진실하고 유익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설사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하더라도 말하지 않는다.’ ‘진실하고 유익한 말이라면 사람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이 말해야 한다.’ 진실과 유익이 말의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스님은 원효 스님의 화쟁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땐 이치에도 맞아야 하지만 정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치는 진실에 토대하는 것이죠. 진실을 잘 짚더라도 정서적으로 얽힌 게 있으니 그것도 잘 살피고 헤아려야 합니다.” 

곧 말과 글이란 상대방과 화쟁(和諍)을 하는 과정이다.  

 

백승권
글쓰기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로 업무용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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