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스승과 제자의 ‘리턴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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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스승과 제자의 ‘리턴 매치’
  • 백승권
  • 승인 2021.06.2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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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주민자치회 회장이 된 대기업 팀장

주말에 쉬는데 A의 전화가 왔다. 수원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뒤 한동안 적조하게 지냈는데 1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A는 필자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꼭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인다. 예의 계면쩍어하는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한참 뜸을 들인다.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 제가 마을신문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제가 신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시민 기자와 어린이 기자도 교육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다. 즉답하지 못하고 어쩌다 마을신문을 창간하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 달 전 제가 사는 동의 주민자치회 회장이 됐어요. 올해 사업으로 마을신문 제작과 어린이 기자단을 운영하려고 시의회에 예산을 신청했는데 그게 통과돼서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과연 A답구나’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는 유수의 대기업에 다니는 팀장이다. 대기업 팀장 생활은 직장 내 업무만으로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텐데 주민자치회 회장이라니. 우리나라 대기업 팀장 가운데 주민자치회 회장을 맡은 사람은 A가 유일할 듯싶다. 대기업 직장인 가운데 A만큼 사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은 아마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 것이다.

1년 전 수원에서 만나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A는 아파트 입주민 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직책은 주로 현업에서 은퇴한 나이 많은 사람의 차지 아닌가. 

A는 2008년 이후 10년 정도 우리나라의 퇴행적 정치 현실을 겪으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부터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출마했고 마침내 당선까지 된 것이었다. A는 또 자신이 지지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당선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노라고 밝혔다. 

20대 때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30대 때 언론운동, 환경운동에 참여했으며 40대 때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386 운동권’ 출신인 필자가 보기에도 A의 열정은 뜨거웠다. 무엇보다 절대 식는 법이 없었다. 필자는 이미 사회적 이슈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생업과 개인적 관심사에만 충실하려고 꿍꿍이를 하고 있는데, A를 접하면 마음 한쪽이 괜히 찔리는 걸 감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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