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Don't tell'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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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Don't tell'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 백승권
  • 승인 2021.02.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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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 Show! Don't tell(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글쓰기 강사의 보증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력을 먼저 소개한다. 주최 측이 하기도 하지만 강사 스스로 하기도 한다. 강사 생활 초기엔 주로 주최 측 소개에 의지했다. 자화자찬이기 마련인 프로필을 본인 입으로 얘기하는 건 왠지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숫기가 참 없었다. 

2, 3년 경력이 쌓이자 소개는 스스로 하겠노라고 자청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보낸 프로필을 교육 담당자가 진땀을 빼며 떠듬떠듬 읽어내려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희한한 일은 담당자들이 적혀 있는 글을 그대로 읽는데도 꼭 한두 개씩 틀리게 발음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란 사실이다. 강사 이름을 ‘박승권’이라고 개명하거나, 회사 이름을 ‘실용글쓰기연구소’라고 작명하거나, 동양미래대학을 ‘동양대학’이라고 바꿔 부르거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내용이라 필자가 나서서 굳이 그걸 정정하진 않았다.

본격 강의에 들어가기 전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는 것이 제일 힘들고 어색했다. 마땅한 오프닝 멘트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할 때가 많았다. 오프닝 멘트로 프로필을 얘기하자 그런 고민이 싹 사라졌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 소개는 스스로 하는 일이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교육 담당자의 곤란한 처지를 벗어나게 해준 꼴이 돼, 그가 고마운 마음마저 갖게 만드는 망외(望外)의 소득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기자 생활을 하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지냈습니다. 대통령 메시지, 대통령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부에 발표되는 각종 정부 문서를 리라이팅(Rewriting)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후반부엔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 여덟 권과 참여정부 다큐멘터리 5부작 제작을 총괄했습니다. 청와대를 나온 이후 2010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직장인을 위한 업무용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한 해 평균 200여 차례, 800시간 이상 강연하고 미국 순회강연도 세 차례 진행한 바 있습니다.”

2~3분 이어지는 강사 소개엔 나름의 전략적 계산이 들어가 있다. 강사 생활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하나. 수강자들은 듣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듣는다는 점이다. 강의내용을 꼼꼼히 듣고 이 강의가 들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보단 믿을 만한 강사인가 아닌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글쓰기 명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메시지보다 메신저다.” 수강자들에게 메신저로서 신뢰를 주지 못하면 메시지가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수용되지 않거나 겉돌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글쓰기 강사로서 청와대 경력은 정성적 능력과 경험을, 강의 대상과 횟수는 정량적 능력과 경험을 보증한다. 수강자들의 눈동자에 살짝 겉돌지도 모를 의심의 기운을 빠른 시간 안에 걷어버리는데 이 프로필만큼 효과적인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물론 강의 초반에 수강자들에게 킬러 콘텐츠, 즉 ‘한칼’을 보여주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4박 5일 이어지는 강의는 이 보증을 보드(Board) 삼아 고저와 완급의 파도를 서핑(Surfing)한다. 강의를 마치고 수강자들의 눈빛을 보면 필자의 서핑보드가 여전히 쓸 만한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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