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중략…)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고재종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중에서)
계절은 겨울이었고, 날이 찼으며, 시심은 가득했다. 때마침(?) 인연이 도래했다. 다른 꽃 다 질 때 홀로 겨울에 피는 꽃, 동백(冬柏)이 기다렸다. 저녁 대신 겨울 아침에, 뜨건 상처의 길이 아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의 길을 한 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이었다. 좋지 아니한가. 저절로, 강진 백련사로 향했다.
꾹 다문 붉은 입술
강진 백련사 동백숲은 백련결사와 함께 가장 많이 알려졌다. 동백은 여수 오동도, 광양 옥룡사지, 장흥 천관산, 고창 선운사 등 서남해안의 섬과 연안 지역에 자생한다. 백련사는 지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곧장 일주문이다. 백련사까지 300m 정도 되는 오솔길은 곁에 동백숲을 거느리고 있다. 울창한 동백숲 분위기는 사찰 서쪽에서 만끽했다. 부도가 있는 이 동백숲은 다른 나무가 거의 없고 오직 오래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빽빽해서 볕 드는 오전에 걸어도 어두울 지경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동백나무를 심었을까. 나무로 만든 사찰 건물들은 불에 약하다. 예경 대상 불상을 모시고 예불 드리며, 스님들이 수행하고 정진하는 도량이 불을 만나면 사라졌으니…. 고려시대 국사(國師, 신라·고려시대 스님의 최고 법계) 원묘 스님이 백련사를 중창할 때 불로부터 도량을 보호하려고 심은 나무가 불에 강한 동백이다. 33,058m2(1만 평) 부지에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들과 섞여 8,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부처님 법 지키는 호법신장처럼 백련사를 호위하고 있다. 동백숲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5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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