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인물
세계 엘리트들이 주목한 일본의 젊은 선승(禪僧)가와카미 젠류 스님 슌코인서 명상교실 운영, 연간 5천명 이상 찾아 수행

하버드, MIT 학생, 글로벌 기업 CEO 등
연간 5,000여 명이 방문해 좌선 체험

일본에 매년 하버드, MIT 등 명문대 학생들과 글로벌 기업 CEO들이 방문하는 선종 사찰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목을 받는 곳은 교토(京都)에 있는 묘신지(妙心寺) 슌코인(春光院)으로, 방문객들은 선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외국인 방문객만 연간 5,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 <프레지던트>를 비롯해, 각종 인터넷 미디어와 지역일간지 <교토신문> 등도 이러한 현상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슌코인은 2006년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 좌선회를 시작했다. 외국인 방문객에게 선을 지도하는 사람은 이 절의 부주지인 가와카미 젠류(川上全龍, 38) 스님이다.

가와카미 스님이 속해있는 묘신지는 임제종 계열의 선종 사찰로 1590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선의 일본어 발음 젠(Zen)을 앞세워 서양에 선사상을 널리 알려 유명한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가 자주 찾던 절이기도 하다.

이 내용만 보면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선종의 엄격함이 배어 있을 것 같지만 영어 좌선회는 명상체험과 함께 자유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토론의 장이다. 가와카미 스님은 “지나친 형식주의는 추구하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최대한 배려하고 있습니다”라며 상황에 따라 의자에 앉아 명상체험을 한다고 말했다. 좌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죽비’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양의 마음챙김 명상 대유행
원인은 서구 세계 가치관의 한계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의 애리조나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티베트 승려들과의 만남, 서양인들의 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정식 승려가 된 후 영어 좌선회를 열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양은 명상 붐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마인드풀니스라고 하는 마음챙김 명상법이 주목을 받고 있지요. 이러한 현상은 서구 세계 가치관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인들, 특히 서양의 엘리트들이 좌선을 체험하기 위해 슌코인에 오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다소 무거운 답변이 돌아왔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서양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그들의 근본 가치관인 실용주의와 근로주의가 무너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융기업을 중심으로 팽배했던 배금주위가 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큰 충격을 받은 서구 사회는 기업인에게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심을 요구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기업인들의 이타심과 자기 인지능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대기업과 명문대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은 대안으로 명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명상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력과 이타심, 그리고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미 1970년대에 고안된 트레이닝입니다. 동양의 명상이 서양에 전해져 붐을 일으킨 것도 오래전이며, 금융위기 이전에도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직원들에게 명상을 활용해 실적을 올리기 위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세계금융위기 이후부터입니다. 이제 이타심과 자기 인지능력이 부족하면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입니다.”

스님은 서구의 기업인들과 기업가를 꿈꾸는 유망한 명문대 청년들이 명상을 체험하기 위해 오는 이유를 자기 인지능력 향상과 공감력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미래에 살아남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 이타적 마음과 자기 인지능력이기 때문이다.

“저는 단순히 선을 전파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서양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마침 선종의 수행법이 그들이 원하는 것과 합치하기 때문에 최대한 유연하게 불교와 선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가르침이란 결국 자기 내면의 통찰이자 알아차림입니다.”

주성원  namoodari@hanmail.net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성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