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 살아가는 뭇 삶들에게 - 파울 루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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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 살아가는 뭇 삶들에게 - 파울 루벤스
  • 보일 스님
  • 승인 2024.03.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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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루벤스의 <자화상>, 1633년,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모든 것은 변화하고, 그 변화는 결국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잠시나마 다가왔던 즐거움과 환희도 불꽃처럼 이슬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열반의 길을 향해 간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인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마저 희생하면서 하루를 살아낸다. 그 과정에서 전쟁터에서든 일터에서든 삶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 좌절, 절망, 비탄 등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살벌한 생존 경쟁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할퀴어지면서 몸과 마음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사람들은 그런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위선 혹은 위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애써 웃음 지어 보이고 또 때로는 화를 내어도 보지만, 각자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린 숨결을 몰아 내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누구에게나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면서 고통을 겪다 그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은 찾아온다. 비단 육신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퇴직, 이혼, 사업 실패, 불합격, 불의의 사고 등등을 겪으면서 좌절과 절망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다행히 인간에게는 자비와 연민의 마음이 있어서 그 고통을 공감하면서 함께 나누기도 한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듯 말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민의 마음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삶에 대한 통찰을 얻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시선이 닿는 곳 전부를 타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여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화가가 있다. 바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다. 

 

“바로크보다 더 유명한 화가”

루벤스는 독일 지겐(Sigen) 태생으로, 1577년 프로테스탄트의 칼뱅을 신봉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루벤스는 평생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이어갔는데, 주로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안트베르펜은 루벤스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한데, 열네 살 무렵에는 가톨릭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언어에도 재능을 보인 루벤스는 훗날 6개 국어를 구사하면서 스페인의 외교관으로 활약하게 되는 토대가 이때부터 마련된다. 

당시 루벤스는 두 명의 스승에게서 사사 받는데, 아담 반 누트와 오토 반 벤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매너리즘 화가다. 루벤스는 가톨릭 학교에서 지내서인지 반종교 개혁 노선의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 후 여느 천재 화가들이 그렇듯 루벤스도 이탈리아로 향하게 되는데,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지에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티치아노와 같은 천재 화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접하게 된다. 루벤스의 눈에 비친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마도 루벤스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풍부한 색감과 색조는 티치아노에게서, 명암 대비 기법인 테네브리즘(Tenebrism)은 카라바조, 사선의 구도를 사용하는 것은 틴토레토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하다.

루벤스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화가가 됐으며, 발리셀라 산타마리아 교회의 제단화 작품까지 의뢰받게 된다. 이 시기 루벤스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데, 마치 이전의 모든 이탈리아의 회화 전통이 루벤스에게로 수렴되고 다시 루벤스로부터 확장됐다고 할 정도다.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는데, 정작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그 무렵 마침 오랜 전쟁이 휴전 상태에 접어들어 안트베르펜은 다시 번성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루벤스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결혼도 하고 이내 이사벨라 대공비의 궁정화가로 지명받기에 이른다. 어렸을 적부터 귀족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지적이고 세련된 귀족들의 매너가 몸에 밴 탓에 왕족은 물론 귀족들도 루벤스의 그림뿐만 아니라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천재 화가 중에서 루벤스만큼 유복했던 인물도 드물 것이다. 왕족과 귀족들의 관심과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또한 그만큼 베풀 줄도 알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성취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도 죽음은 비껴가지 않는다. 1640년 지병이었던 통풍과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그가 사랑했던 도시 안트베르펜에서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아무리 그림이 크더라도, 아무리 제재가 다양하더라도 내가 그릴 수 없는 그림은 없다”
- 루벤스

루벤스는 제단화를 비롯한 초상화, 역사화 등 무려 3,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적 재능을 꽃피운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그 많은 작품 의뢰를 어떻게 혼자서 다 감당해 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드로잉은 루벤스가 직접 했고, 프린트 작업이나 배경 처리 등은 전문가와 협업하거나 그에게서 배우자고 몰려든 제자들이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마리 드 메디치의 마르세유 입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 1573~1642) 왕비의 얼굴 묘사는 루벤스가 직접 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될 정도였다.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마르세유 입항>,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루벤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루벤스의 풍부한 예술적 감각 중에서도 인간의 감정 상태를 묘사하는 능력은 특히 탁월하다. 특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에서 루벤스가 보여준 고통에 신음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표정 묘사는 가히 압권이다.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친 벌로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로부터 공격당하는 장면에서 루벤스의 천재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독수리는 사슬에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옆구리를 날카로운 부리로 찢고 간을 헤집어내어 뜯어 먹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얼굴 전체를 발톱으로 짓누르고 있으면서, 한쪽 발톱으로는 오른쪽 눈을 찌르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견뎌내야 하는 이 고통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수리가 아무리 먹어 치워도 간은 거듭 재생되고 독수리의 공격은 계속되는 저주다. 

이 작품에서 루벤스 특유의 관능적이고 역동적인 인체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공포와 고통, 절망과 저항이 공존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표정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정도다. 거꾸로 매달려 발버둥 치는 프로메테우스의 몸은 팽팽한 긴장과 위태로움을 더하고 전체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서리치고 있다. 사슬에 묶여있는 왼쪽 팔뚝에 드러난 힘줄과 터질듯한 근육을 통해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몸부림을 잘 보여준다. 인간에게 처음으로 불을 가져다준 선각자적인 영웅이 치러야 할 대가이자 숙명을 보여주면서, 인간 고통에 대해 느끼는 루벤스의 강한 연민이 드러난다. 

 

괜찮아, 괜찮아…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루벤스의 따뜻한 시선은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 다작으로 유명한 루벤스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짐(The Descent from the Cross>(1611~1614)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어렸을 적 티브이로 시청했던 만화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마지막에 숨을 거두면서까지 꼭 보고 싶어 했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이 연작 만화의 결말 부에서 네로는 할아버지를 여의고, 살던 곳에서도 쫓겨나 갈 곳이 없어지자 안트베르펜 성당 바닥에 앉아 그토록 염원하던 이 그림을 바라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안타깝게 죽어간다. 네로가 맨발로 차가운 성당 바닥에 서서 이 그림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그림은 바로크 시대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웅장하고 풍부한 구도와 색감,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세 폭 제단화로 그려진 이 그림은 원래 <십자가에 올려짐(The Raising of the Cross)>(1610)에 연이어서 그려진 작품이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짐(The Descent from the Cross)>(1611~1614), 벨기에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소장

마치 바로크 스타일의 종교화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전 시대의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들의 예술적 영감과 고유한 기법들이 루벤스의 붓끝으로 모인다. 종교를 초월해서 누가 보아도 이 그림은 경탄할 만하다. 불자인 내가 보아도 신비로움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다. 루벤스는 사선으로 단순화된 구도 속에서 카라바조를 연상시키는 테네브리즘 기법을 세련되게 구사하고 있다. 빛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시신을 수습하러 나선 성 요한을 비롯한 추종자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루벤스의 수많은 그림 가운데 이 작품을 최고로 간주하는 이유는, 구도의 훌륭함이나 다양한 기법 구사도 한몫하지만 예수의 죽음을 현실로 마주하는 사람들의 눈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 명의 마리아, 즉 서 있는 성모 마리아와 두 손으로 발을 받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 손으로 거들고 있는 요한 어머니 마리아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이다. 당장이라도 오열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고 빨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황망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손을 뻗어 거들고 있다.

그들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예수의 시신만이 아니라 상실과 고통의 무게일 것이다. 어찌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뿐이겠는가. 삶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이들에게 루벤스는 따듯하게 공감하고 위로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마치 루벤스가 그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이듯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이제 고통은 끝났으니, 
 다 괜찮다. 괜찮아…….’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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