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에서는 진실을 보고자 한다면 혹은 열반에 이르고자 한다면 “뒤바뀐 헛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한다. 그러려면 보살은 우선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마음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 다양하고 화려한 언어와 상징들이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말과 화려한 논변은 우리의 생각을 움직이고 진실 혹은 진리에 다가서는 듯하지만 이내 엇나가거나 심지어 우리를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 말과 글에 속는 것인데, 하물며 깨달음의 길을 향해 가는 길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디 말뿐이랴. 눈에 보이는 현상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믿기 어려운 현상을 말하면, 대뜸 하는 말이 “네가 봤어?” 하고 되묻는 일이다. 만약 눈으로 직접 봤다면 사실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눈으로 봤다고 해서 진실을 담아낼 수 있을까? 보이는 게 보편적이고 절대적 진리일까. 그러고 보면 그림이나 사진만큼 주관적인 매체도 드물다. 언뜻 보면 세상을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 같지만, 뒤바뀐 진실을 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그림 속 평면 위에서도 화가나 감상자, 나아가 그림 속 등장인물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서사가 전개되기도 한다. 이를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가 있다. 그가 바로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이다.
“벨라스케스는 화가 중에서도 진정한 화가이다.”
_에두아르 마네
화가 중의 화가, 천재 중의 천재
천재는 천재가 알아본다고 했던가. 미술사상 내로라하는 천재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화가 하면 벨라스케스를 들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의 스타이자 스페인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손꼽힌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하급 귀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고향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벨라스케스는 24세에 궁정화가로 선발, 일찍이 주목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승의 딸과 결혼하고 두 명의 딸을 두어 나름 평온한 가정생활을 한다. 천재의 삶치고는(?) 상대적으로 굴곡이 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가 되면서 가족과 함께 마드리드로 이사한 후, 독점적으로 국왕 필리프 4세의 초상을 그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1628년 로마로 건너가 새로운 화풍을 익히게 되는데, 빛을 포착해 묘사하는 인상주의적 경향을 띠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로마에서 2년가량 있는 동안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그리기도 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표현과 묘사로 인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이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으로 오마주 되면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의 사후, 많은 화가가 그의 천재성을 흠모하며 존경을 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화가 중의 화가로 인정하면서, 작품 곳곳에서 벨라스케스의 화풍을 실험적으로 차용한다.
붓 터치의 생생함 ’알라 프리마(Alla prima)’
벨라스케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기법이 바로 ‘알라 프리마’이다. ‘알라 프리마’란 몇 번의 붓 터치만으로도 대상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탈리아어로 ‘첫 시도’라는 뜻으로 원래는 한 겹의 칠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 기법을 사용한 그림은 멀리서 보면 상당히 정교하고 생생하게 묘사된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흡사 대충 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도 떨어져서 보면 다시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순간을 포착하는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인상주의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알라 프리마’를 구사하려면 화가의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최소한의 터치로 직관적으로 대상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벨라스케스의 천재성에 한몫을 더하는 이 ‘알라 프리마’ 기법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엘 프리모 초상>(1645)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시녀들>에 등장하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손을 자세히 보면 손가락 끝이나 손톱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언뜻 보면 대충 그린 것 같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그림은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3차원 입체 영상을 보는 듯하다. 후에 이 기법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마네는 물론이고 쿠르베 또한 벨라스케스의 시그니처와 같은 이 기법을 연구하고 따라 한다. 또한 유명 작가들에 의해 모작 혹은 패러디도 무수히 이어진다. 피카소나 살바도르 달리도 이 <시녀들>을 모티브로 해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시녀들(Las Medinas)>
전문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1985년 당시 영국의 유력 미술 매거진에서 화가와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을 떠올릴 텐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전문가들은 다소 의외의 선택을 한다. 정답은 예상과 달리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dinas)>(1656)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일단 이 그림은 시점이 파격적이다. 한참 보면 도대체 누가 주인공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이 그림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중앙에 서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눈에 띈다. 시녀 한 명은 공주를 달래보려 장난감을 가지고 애쓰는 모습이고 다른 시녀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마도 국왕 내외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커다란 개의 등을 앙증맞은 발로 툭툭 밀고 있다. 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내리깔고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목을 끄는 인물은 왼편으로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화가이다. 바로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자화상도 아닌 그림에 자기 모습을 그려 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한층 멋스럽게 어깨를 젖힌 채로 팔레트에 붓을 칠하고 있다. 왼쪽 가슴에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문장이 크게 박혀 있다. 아마도 벨라스케스는 이 작위를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공주를 향하지 않고 정면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두 그림 사이 중간에 걸려 있는 거울이다. 거울은 왕과 왕비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 아마도 벨라스케스의 작품 모델이 된 듯하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단일한 평면 위에 여러 시선이 중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화가인 벨라스케스의 시선이다. 그림 속 벨라스케스의 시선은 그림 속의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그림 밖, 그러니까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펠리페 4세와 그의 아내 마리안느의 시선이다. 그 둘은 그림 밖에 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볼 때 그 둘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관람자의 시선이다. 거울이 걸린 위치를 중심으로 화가와 왕과 왕비, 관람자 이렇게 세 가지 시선이 중첩되고 있다. 이 중첩으로 인해, 누가 보는 자이고 보이는 자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전체적으로 이 그림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비출 수 있는 커다란 거울을 앞에 두고 그렸을 때 나올 수 있는 구도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구도상의 모순은 여전하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이런 시도를 통해 그림이라는 틀 밖의 대상까지도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공간을 수렴하거나 혹은 반대로 확장해 나간다.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차이만으로도 그림 안과 밖의 경계를 지워낸다. 또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좌우가 반대된 화면만 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산다.”
_미셸 푸코
입으로 베어 문 순간 사과를 안다
미셸 푸코는 그의 책 『말과 사물』 첫 장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상식적으로 그림에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나 감상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미셸 푸코는 <시녀들>에서 그림 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서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그림 속 벨라스케스와 공주, 그리고 두 시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그림 밖 인물, 필립 4세와 마리안느 왕비이다. 이들의 시선 덕분에 이 그림은 놀랍게도 그림 밖의 현실 공간까지도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림을 대상과 현상을 재현하는 작업이라고 할 때, 벨라스케스가 재현 중인 모습을 다시 거울을 통해 재현하는 셈이다.
사실상 이 장면에 관여한 그림 안팎의 모든 것은 치밀하게 재현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기획한 화가 자신을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림 속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무한한 순환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살아 숨 쉬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아니라 하나의 ‘표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잘 구축된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그래 봤자 어차피 표상에 불과할 뿐이고, 그 속에서 진실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리 말하자면 팔만대장경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심오하게 깨달음 혹은 열반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수행자가 스스로 체득하기 전에는 그 또한 하나의 표상에 불과한 것이다.
푸코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고, 보편적이고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다. <시녀들>이 세상에 선보인 것은 17세기 고전주의 시기, 즉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을 통해 지식이 구성되던 시기다. 푸코는 “<시녀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재현에 재현을 거듭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상일 뿐, 진실을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가 보고, 말하는 것들이 뒤바뀐 것들, 즉 전도된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요리 보고 저리 보아도 결국은 진실에는 다가설 수 없다. 아무리 사과가 달콤하다고 설명한들,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말과 글에 불과하다. 사과를 입으로 베어 무는 순간, 비로소 사과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