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용이 나르샤] 불화 속에 나타난 용과 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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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용이 나르샤] 불화 속에 나타난 용과 용녀
  • 이승희
  • 승인 2023.12.2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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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경전을 수호하다
(위)[도판 1]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 변상도(보물), 1334년,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소장. 감색 종이에 은으로 쓰고 금으로 그렸다. 출처 『사경변상도의 세계, 부처 그리고 마음』(국립중앙박물관, 2007)
(아래)[도판 1]의 세부. 용과 아수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

축생에서 호법신으로

용왕은 인도 신화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반(半)신격의 강력한 힘을 소유한 뱀(나가)에서 비롯한 존재다. 나가는 코브라 등 강력한 독을 지닌 동물이자, 인도 신화에서는 창조신 브라흐마의 아들 카샤파(Kashyapa)와 다크샤신의 딸 카드루(Kadru)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을 말한다. 

힌두교에서 그들은 지하세계인 나가로카에 거주하지만 천상과 지하, 인간계에 두루 존재하며 삼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나가는 신의 종족으로서 선과 악이 모호하고, 영웅 혹은 괴수의 모습으로 인간계에 섞여 사는 존재인 것이다.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나가는 조화와 변신이 자유롭고 지상과 천상을 오르내리는 신통력을 지녔지만, 결국 축생에 속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인도 신화 속 용들의 일부가 불교에 유입되며 용왕으로 변모한다. 경전에 등장하는 용왕들은 부처님께 귀의했지만, 선악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고 갖가지 신통력을 지닌다. 

용왕의 형상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용왕을 뱀의 이미지로 표현한 미술은 남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불교회화에서는 용의 모습 혹은 용과 용왕의 이미지가 중첩된 형상, 그리고 마치 제왕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불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을 살펴보자.

용왕이 용의 모습으로 표현된 사례는 1334년 『대방광불화엄경』 권15의 변상도(화엄경변상도)[도판 1]에서 볼 수 있다. 오른편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설법하고 있고, 왼쪽에는 수미산이 그려져 있다. 해와 달이 수미산 중턱에 있으며, 수미산 정상에 그려진 건물은 제석천이 머무는 도리천궁(忉利天宮)의 희견성(喜見城)이다. 

수미산 우측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희견성에서 코끼리를 타고 나온 제석천의 군사들과 수라궁에서 나온 아수라(阿修羅)의 군사들이 격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 열 마리의 용이 수미산과 희견성 주변을 날아다닌다. 제두뢰타, 연라바니, 비류박차흑구담, 여의주, 바수시, 단다바타, 만현, 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용왕들이다. 용은 천과 아수라가 싸울 때, 명(名)과 색(色)의 위력으로 제석천을 도와 옹호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용과 용왕의 이미지가 중첩된 모습은 고려 『묘법연화경』(『법화경』) 변상도[도판 2]의 영산회상도에서 볼 수 있다.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주변에 10대 제자와 천왕, 보살중이 있고 바깥으로 가루다, 건달바 등의 팔부중이 외호하고 있다. 부처님 위로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양쪽에 각각 있고, 타방(他方)의 불보살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고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는 음악의 신 건달바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옆으로 두 명의 용왕이 그려져 있다. 용왕 뒤로 용틀임하는 두 마리의 용이 있다. 

 

용왕, 용궁의 보물을 공양하다

일본 다이토쿠지(大徳寺)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도판 3]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해 관음보살에게 공양하는 용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과 율장·논장에 대한 목록집인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의하면, “용궁에는 신묘한 구슬과 경전(금첩金牒), 얻기 어려운 재화와 듣기 어려운 법(法)이 탑과 절(塔寺)마다 널려 있다”고 한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신묘한 구슬과 경전을 수월관음에게 공양하기 위해 바다 위로 올라온 인물들이 표현됐다. 제일 앞에서 향로를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용왕이다. 용왕은 두 개의 뿔이 장식된 황색의 금관을 쓰고 있으며, 금색 문양이 그려진 홍포(紅袍, 붉은색 예복)를 걸치고 있다. 향로는 연꽃 모양이다.

용왕 뒤로는 용왕의 부인이 산호와 보배스러운 꽃이 담긴 접시(반盤)를 두 손에 들고 뒤따른다. 용왕 부인 뒤로는 관모를 쓴 남성 한 명과 공양물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여인들 뒤로는 여러 권의 두루마리를 허리에 끼고 관복 차림을 한 무서운 모습의 종규(鍾馗, 나쁜 귀신의 일종)가 있다. 종규 옆에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인물이 있다. 사람의 몸을 가졌지만, 머리는 귀신이다. 어린아이는 붉은색의 여의보주를 들었다.  

용왕과 용왕 부인, 어린아이 등의 인물 뒤로는 윗옷을 벗어 몸을 드러낸 인물 넷이 뒤따른다. 제일 앞은 번(幡)의 깃대를 쥔 반인반수(半人半獸)다. 뒤로 세 명이 있는데, 앞쪽에 귀신 머리를 한 인물은 보화가 가득 담긴 항아리(대호大壺)를 등에 멨다. 바로 옆 짐승 모양 머리의 인물은 벌거벗은 상반신의 어깨 위로 표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공양물을 짊어졌다. 이어 바다 동물의 형상을 한 인물은 머리에는 진주가 담긴 조가비를 이고, 허리에는 아주 큰 홍산호를 끼고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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