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의 붕괴를 막고 능 주인의 위엄을 드러내는 호석(護石)에 십이지신장을 새긴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라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품이 되었다. 현재까지 신라의 능 36기와 묘 9기가 전하는데, 그 가운데 약 11기의 능과 묘에 십이지신장 호석을 쓴다. 문헌과 유물을 통해 능의 주인이 밝혀진 흥덕왕릉과 원성왕릉 외에 성덕왕릉·헌덕왕릉·경덕왕릉·김유신묘·구황동 왕릉지·진덕여왕릉·구정동방형분 등이 11기의 능묘이다. 십이지신장이 처음 놓인 왕릉은 제33대 왕인 성덕왕릉으로, 이때는 면석이 아닌 능을 둥글게 두르고 있는 입상이다. 이른 아침 경주 안강의 흥덕왕릉에서 시작해 해질 무렵 헌덕왕릉의 솔숲을 거닌 뒤, 황룡사지 금당터에서 초저녁 샛별을 맞이하는 ‘십이지신장 능 답사’는 경주 답사의 화룡점정이다.
김유신묘. 크기와 장대함으로 보아 신하의 묘로서는 적합하지 않고 왕의 능묘일 것이라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경주의 서쪽에 있는 산의 줄기 가운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능선상의 봉우리에 김유신묘가 위치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 외에도 『고려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지리지에서도 그 위치를 전하고 있다. 호석의 십이지신장은 옷은 평복으로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지만 선이 굵고 상이 커서 장군의 묘를 지키는 신장으로서 제격이다. 동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까지 매표를 해야 하나 그 외 시간에도 능을 들고날 수 있게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송화산에 오르내리는 어떤 주민들은 능에 합장 반배로 예를 갖추고, 더러는 합장 기도를 한다. 묘 우측에 선도산이 있다.
신라와 한국 불교 문화의 정수로 일컫는 불국사·석굴암·성덕대왕신종 등 세계 최고의 예술품을 탄생시킨 왕, 그가 경덕왕이다. 만약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릉에 십이지신장을 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독창적인 왕릉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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