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왕릉 수호신장 십이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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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왕릉 수호신장 십이지신
  • 유동영
  • 승인 2023.01.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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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의 붕괴를 막고 능 주인의 위엄을 드러내는 호석(護石)에 십이지신장을 새긴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라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품이 되었다. 현재까지 신라의 능 36기와 묘 9기가 전하는데, 그 가운데 약 11기의 능과 묘에 십이지신장 호석을 쓴다. 문헌과 유물을 통해 능의 주인이 밝혀진 흥덕왕릉과 원성왕릉 외에 성덕왕릉·헌덕왕릉·경덕왕릉·김유신묘·구황동 왕릉지·진덕여왕릉·구정동방형분 등이 11기의 능묘이다. 십이지신장이 처음 놓인 왕릉은 제33대 왕인 성덕왕릉으로, 이때는 면석이 아닌 능을 둥글게 두르고 있는 입상이다. 이른 아침 경주 안강의 흥덕왕릉에서 시작해 해질 무렵 헌덕왕릉의 솔숲을 거닌 뒤, 황룡사지 금당터에서 초저녁 샛별을 맞이하는 ‘십이지신장 능 답사’는 경주 답사의 화룡점정이다.

김유신묘. 크기와 장대함으로 보아 신하의 묘로서는 적합하지 않고 왕의 능묘일 것이라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경주의 서쪽에 있는 산의 줄기 가운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능선상의 봉우리에 김유신묘가 위치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 외에도 『고려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지리지에서도 그 위치를 전하고 있다. 호석의 십이지신장은 옷은 평복으로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지만 선이 굵고 상이 커서 장군의 묘를 지키는 신장으로서 제격이다. 동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까지 매표를 해야 하나 그 외 시간에도 능을 들고날 수 있게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송화산에 오르내리는 어떤 주민들은 능에 합장 반배로 예를 갖추고, 더러는 합장 기도를 한다. 묘 우측에 선도산이 있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의 능

신라와 한국 불교 문화의 정수로 일컫는 불국사·석굴암·성덕대왕신종 등 세계 최고의 예술품을 탄생시킨 왕, 그가 경덕왕이다. 만약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릉에 십이지신장을 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독창적인 왕릉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능

지금의 원성왕릉은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인 학자가 현재의 숭복사지에서 숭복사임을 알리는 비편을 발견함으로써 제 이름을 가지게 됐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동곡사 자리에 원성왕릉을 조성하고 동곡사를 숭복사로 하였다는 최치원의 비가 남아 있다”는 내용이 있어서다. 그 전까지 이 능은 문무왕릉으로 불렸다. 무인복을 입은 십이지신장의 선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능 앞으로는 무인석과 문인석·네 마리 사자상 등이 서 있다.  

 

원원사지 쌍탑

『삼국유사』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에 있는 원원사는, 안혜 등 네 스님이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으로 보아 화려한 쌍탑 등 예사로운 절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쌍탑은 기단부에 십이지신장을, 탑신부에 사천왕상을 새긴 최초의 석탑이다. 석탑에 새겨진 십이지신장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뿐만 아니라, 연화대좌에 앉아 수인을 하고 있어서 참배객의 경배 대상이기도 하다. 이는 왕릉을 지키고 있는 십이지신장과 가장 큰 차이다. 두 탑과 그 안의 신장들은 해가 부드럽게 내려앉을 무렵부터 생기를 더하다가 원원사 노보살이 의자에 앉아 대종을 울릴 즈음 최고조에 달한 뒤 침묵한다. 빛 꼬리가 스러질 즈음부터는 원원사지 금당터에 선 내가 스스로 발할 때이다.  

 

 

글.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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