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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은 끝났다
대승은 끝났다
저작·역자 시현 정가 25,000원
출간일 2018-03-26 분야 불교
책정보

신국판 변형 (140*200) | 592쪽 | 양장 | ISBN 978-89-7479-391-3 (93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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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
대한불교조계종 비구 수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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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기본
도명(盜名)하는 자가 어찌 올바른 자랴!
 

제2편 계율
데와닷따의 일은 불법승의 일이 아닙니다

제3편 사상
윤회하느냐 소멸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4편 수행
부처님의 전생 수행으로 퇴행하다

제5편 평가
대승은 더 이상 불교가 아닙니다
 

- 쓰고 나서

부록 1 진리의 경
부록 2 총 스님에게
부록 3 찾아보기 번역 대조

상세소개 위로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다 부처님 말씀은 아니다

부처님 입멸 100년 후 계율 문제 때문에 여럿으로 흩어졌던 불교 교단은 급기야 기원 전후에 대승이라는 ‘교단’의 출현을 맞는다.
대승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기존의 교단을 폄하해야만 했다. 우선 ‘말’의 전쟁이 시작됐다. 대승은 기존 집단을 히나야나(hīna-yāna)라고 불렀다. 우리는 소승(小乘)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확한 번역은 열승(劣乘)이다. 기존 수행자 집단에 대해 ‘열등한 것들’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붓다를 이상화(신격화)하기 위해 아라한과 기존 수행자 집단을 격하시키는 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초기 경전에서 아라한은 분명 부처님과 ‘동격자’였다. 대승은 기존의 경전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대거 창작된 경전이 등장하게 된다. 불전문학이 나타나고 찬불승(讚佛乘)이 등장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우선 보살을 등장시켜 맞대결을 펼친다. 지혜제일 사리뿟따 대신에 과거 7불을 가르쳤다는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을, 신통제일 마하목갈라나 대신에 천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을, 두타제일 마하깟사빠 대신에 웅장한 난이도의 원력 수행에 매진하는 보현보살을, 전법에 목숨 바친 뿐나 대신에 지옥 중생들을 위해 세세생생 목숨 바치겠다는 지장보살을 내세운다. 이외에도 여러 위력 있는 대승 보살들을 선보이며 성문 제자들을 경전에서 지운다.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수많은 허장성세형의 표현들은 이렇게 과도한 경쟁 심리에서 피어난 무리수였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대승이 꽃을 피우면서 위경 만들기 경쟁은 도를 넘어섰다. 오죽했으면 우후죽순 늘어난 경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는 작업이 대승을 자처했던 중국에서 조차 수차례 진행된다. (4세기 동진의 천재 스님이라 불리던 석도안 스님이 주도한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때 많은 수행자들에 의해 위경 판별을 받은 경전 중에는 『천지팔양신주경』이나 『부모은중경』 등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불교가 상상하는 세계가 아니라 도교나 유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위경 판별까지 받았던 이런 경전은 21세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독경되고, 사경되는 경전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과연 우리가 배운 대승이 정말 부처님 말씀이었는지 한번쯤은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

파대승 근현본(破大乘 顯根本)

이 책은 대승이 근본불교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그 사상은 근본불교와 일치하는지, 또한 그 수행 방법과 결과물은 근본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더불어 한국불교의 주된 수행법인 간화선의 수행 내용과 그 깨달음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법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저자 스스로를 포함해 많은 출가 수행자들이 지금까지 수 년, 수십 년을 대승경전에 입각한 수행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지만 별다른 진보를 경험하지 못하고 대승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선 저자는 네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즉 기본자세, 계율 조목, 실체 사상, 수행 방법에 있어서 대승은 불교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의 대승에 대한 비판은 이 네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지지만 세 가지 측면으로 주요하게 다룬다. △ 니까야와 아함을 비롯해 초기에 형성된 경전과 대승이 출현한 이후 만들어진 경전 사이의 간극을 추적해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는 작업 △ 기본 개념의 선명화, 그리고 이를 위해 중요 번역어 하나하나를 추적해 가는 작업 △ 출가자의 수행 정신과 맞지 않는 부분을 파헤쳐 가는 작업.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번역과 차별성을 갖는 번역어와 기본 개념들이 주석으로 방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번역어와 그 개념을 하나씩 잡아나가다 보면 불교 전체를 관통하고 회통하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더불어 저자는 대승뿐 아니라 아비담마 철학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저자의 주장은 남방 상좌부 불교에도 북방의 대승에도 있지 않다.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특히 근래 있었던 깨달음 논쟁과 관련해 제 4편에 실린 ‘수행’의 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는다면 한국불교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대승의 수행법은 부처님의 전생 수행법으로 퇴보

또 하나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 볼 부분은 대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깨달음에 대해 논한 대목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승의 수행법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었던 수행법이 아니라 부처님의 ‘전생 수행법’이라고 일갈한다. 근본불교에서는 성스러운 8차선의 길(팔정도)이 승속을 아우르는 수행법이었음에 비해 대승에서 제시된 승속의 공통 수행법은 대개 ‘6바라밀’과 ‘네 가지 무량한 마음(사무량심)’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6바라밀’과 ‘네 가지 무량함’ 등은 모두 부처님의 전생 수행법이라고 주장한다. 책 속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아무것도 없는 영역’이나 ‘인지가 있지도 없지도 않은 영역’은 외도들이 달성한 순수 고정됨의 수행법이었고 부처님도 보살 시절에 외도의 제자가 되어 달성한 수행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처를 이룬 후에 차용했다. 매우 유용한 수행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직접적인 핵심이 될 수는 없는 수행법이다. 또한 단순히 두 영역을 다루고 주장한다고 해서 불교만의 수행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부처님이 전생의 보살 시절에 닦은 수행법이라고 해서 불교만의 순수한 핵심 수행법으로 다루어질 당위성은 없다.” (448쪽 「부처님의 전생 수행법」 중)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불교 수행법의 핵심으로 보는 것일까?
저자는 간화선에 다시 한 번 주목한다.

△ 깨달음의 인가와 그 족보는 정법의 안목으로 보자면 바람직하지 않은 인습이지만 간화선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나름대로의 증빙 자료일 수 있다. 인가를 통한 깨달음의 족보에 정당성과 신빙성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깨달은 종장들의 역사적인 실존과 그들의 교류는 부정할 수 없고 계파가 다를지라도 서로서로 경지를 확인하고 인정한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 화두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을 때의 찰나적인 체험에 대한 묘사가 근본불교의 수행법으로 깨달았을 때의 묘사와 동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간화선의 깨달음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다.

△ 간화선의 의심 수행은 단순관찰의 성질을 가진다. 관찰의 성질이 있다면 알아차림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선정 현상은 근본불교의 네 가지 명상들과 일치한다.

저자는 결국 의심 끝에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의 깨달음은 근본불교의 깨달음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많은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논쟁이 일본에서는 19세기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현재 일본은 대승과 남방불교를 넘어선 불교 3.0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논쟁이 부재한 한국불교의 토양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하기에 교학과 수행 양 측면에서 저자의 문제 제기는 우리가 딛고 선 땅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하다.

책속으로 위로

북방아비담마 철학을 대표하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bbatthavāda)의 부파명은 ‘모든 것은(sabba) 있다는(attha) 주장(vāda)’이라는 뜻이다. 경전의 문장에서 부정한 구문을 그대로 자신들의 주장 명제로 삼는다는 것은 명백히 부처님과 법에 대항하는 처사다. 설사 ‘모든 것’을 현상적 차원과 궁극적인 차원으로 양분한 뒤,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법의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이라고 해명한다고 해도 역시 실체철학의 이분법적인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변명일 뿐이다. 이런 주장이 부파불교의 대세였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표현 양식만 다를 뿐이지 뜻하는 바는 부처님이 주장하는 ‘중간’을 말하는 주장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영원불변하는 자체성질을 지니는 법을 주장하는 아비담마 철학에서 그 법들의 조합으로서의 세계는 궁극적인 입장에서 상주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방상좌부가 ‘모든 것은 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을지라도 동일하게 비판 받아야 할 사항이다. 둘 다 자체성질을 상정하는 다원적 실체론이어서 기본적인 입장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 298쪽 「창조신의 기원 - 유무극단」 중

대승의 공사상에서 공성이라는 텅 빈 실체가 생겨난 근원적인 원인은 『중론』 에서 ‘비었음’에 해당하는 ‘śūnya’(빨리어로는 suñña)라는 단어를 추상명사화한 ‘śūnya-tā’(空性, 비어 있는 상태)를 사용한 것에 있었다. 그러나 이 추상명사는 근본경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비었음’이 추상명사화 되면서 후대에는 구체적인 사물의 부재라는 의미는 퇴색해지고 무실체라는 의미만 담겨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무실체라는 것도 ‘비어 있는 상태’(空性)라는 추상적인 존재성으로 인해 대상화된 상태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존재성은 없지만 어쨌든 ‘비어 있는 상태’라는 추상적인 존재성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비어 있는 상태’는 후에 만물에 내재하면서도 초월적인 실체로 둔갑하게 된다.
- 342 「대승의 실체 4 - 공성」 중

예컨대 『법화경』 에서 ‘삼승 선교방편’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데, 삼승(세 가지 탈것)이란 성문·연각·보살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는 통틀어 ‘하나로의 탈것’(一乘)이었고 그 하나란 부처를 의미했다. 그런데 보살은 마지막 과정이므로 부처를 이루기 직전까지는 부정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성문과 연각은 이미 부정되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다시 말해 성문을 위한 가르침들은 열등한 가르침이라고 부정한 후에 대승 보살로의 전향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들에게 준 가르침들은 결국 실답지 않은, 일종의 거짓말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동격자들에게 부여한 무학(無學, 공부가 필요 없는 자)이라는 호칭도 거짓말이 되고, 꺼지기 직전에 성문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에는 스승의 주먹 같은 것은 없다고 한 말도 거짓말이 된다. 대승에서는 이런 거짓말들이 모두 방편이었다고 합리화시키는 핑계로써 부처님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그의 온전함을 보전하려 했다. 근본불교와는 이질적인 교리로 불교 안에서 불교의 재산을 이용해 먹으며 살아가는 대승의 이율배반적인 행보의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351쪽 「본래 없는 그 자리가 진아?」 중

동격자는 일 마친 도인이므로 아무 짓이든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격자에게 후퇴는 없다. 그런 생각은 어른이 되면 매일 소꿉놀이도 하고 과자도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린이의 기대와도 같은 것이다.
경에서는 동격자들은 욕망을 향유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까지 한다. 남의 욕망의 문제를 단정할 수 있다는 것은 단정하는 자와 단정되는 자가 얼마나 확실해진 존재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물론 동격자들은 걸릴 탐진치가 완전히 꺼졌기 때문에 ‘걸림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수행자들은 종종 비난받을 만한 탐진치에 걸려 놓고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을 ‘걸림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걸림 없는 자를 병리심리학에서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부른다. 상당수의 강력 범죄자들, 예컨대 연쇄 살인범들 중에는 부끄러움이나 죄스러움이 전혀 없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동격자들은 탐진치가 실제로 이미 제거되었기 때문에 흐트러질 이유나 그럴 필요가 없는 진실로 원융무애한 삶을 살다 간다.
이렇게 위대한 동격자들을 대승의 무리들이 ‘열등한 탈것’(小乘)이라며 비웃었다.
- 475쪽 「동격자, 생사를 해결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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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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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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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 처사 2018-05-01 12:18:29

    맹목적 기복불교를 떠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대승도 상좌불교도 자기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대에 감로가 되어줄 불법의 새로운 모습을 고대합니다.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가르침이면서도 신도수가 급감하는 오늘의 사정을 제대로 직시하고 한국불교가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합장   삭제

    • 이광재 2018-04-19 12:14:04

      어려운 내용이지만 감응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두번에 걸쳐 책을 파듯이 읽어내렸습니다
      불자로서 불교공부 한 기분이 듭니다
      수많은 책들을 다 젖혀놓고 불교이해의 지침서로 삼을만 합니다. 스님의 시각이 온전합니다. 오랜 고뇌가 묻어납니다. 종교라는 울타리에 갖힌 초월적 논리를 벗어나서 시원합니다. 불교가 이지경이 된 것을 제대로 파헤쳤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깊이에 놀라다가 오랜만에 불교에도 학문다운 학문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분이 나타났다고 으로 기뻐합니다.
      매맞을 각오하고 용기내어 출간한 책이라 절판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삭제

      • 조주 2018-04-19 09:18:07

        저자에게 : 그냥 불교를 떠나세요! 이런 황당한 주장을 어떻게...미치미 않고서야 합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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