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깨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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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깨어나기
  • 정선경
  • 승인 2017.05.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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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깨어나기

아마 20년 전쯤이었을 거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렇다. 삶은 고통스럽다는 고성제苦聖諦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불교 공부의 시작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새파란 젊음의 겁 없는 치기였다.

고작 100년도 버거운 인간에게 20년은 긴 시간이었다. 삶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하자면 열흘 밤낮을 풀어도 못다할 만큼 쌓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 세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도 배우게 되었지만, 고통을 친구 삼아 하루하루 일희일비를 거듭하고 있었다.

출가는 고사하고 장좌불와 용맹정진할 용기도 없고 그릇도 안되는 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삶의 고통은 버겁고 무겁게 느껴졌다. 간혹 가뭄에 콩 나듯 희망을 가질 때도 있었다. 나도 노력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더 착해지면 더 행복해질 거야, 내 결점들을 뜯어 고치기만 하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거야. 희망이 단지 희망으로 끝날 줄 알았다.

이제 희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원고를 읽으며 몇 번이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불치의 유전병이 발병했지만 그 고통을 극복해내는 저자와 그의 내담자, 수련생, 친구들이 숨김없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였다. 치유되지 못하고 곪아온 과거의 상처들, 어리석은 편견과 잘못된 믿음, 거짓된 자아에 대한 집착, 아프게 찌르는 자기비난과 후회, 순간을 참지 못하고 와락 터져 나오는 두려움과 분노. 나를 괴롭히던 고통보다 더한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 평온하고 다정한 삶을 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치유였다.

타라, 테렌스, 죠슈아, 제프가 했던 방법을 어설프지만 조금씩 흉내 내어 보았다. 내 목을 조이던 것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찌르르한 위장의 쓰라림이 줄어들며 몸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덜 괴로워하는 게 느껴졌다. 내 곁의 사람들을 더 편안하게 바라보고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고통스럽겠지만, 이제는 그 고통이 무서워 도망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타라 브랙이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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