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2.산치탑 ① 佛塔의 기원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자 당시 독실하게 불교를 믿던 8국의 왕들이 서로 사리를 가져가겠다고 다투는, 이른바 유명한 사리분쟁이 일어났는데 한 바라문의 중재로 여덟 나라에 공평하게 나누어 탑을 모시게 한 것이 부처님 근본 팔탑이다. 이들 근본팔탑이 피프라와나 바이사리의 폐탑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극본 팔탑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다. 8탑을 만든 후에도 부처님의 사리숭배는 더욱 퍼져서 탑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했지만 사리가 없으므로 사리대신 사리병을 넣고 탑을 만들었고[9번째탑], 화장 후의 재를 가지고 만들기도 하였으며, 머리칼이나 의발 등을 넣어서도 탑을 만들어 숭배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리를 넣어 만든 무덤적 문명대 | 호수 : 88 | 2007-12-03 00:00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16. 감실 부조 불상군 어느 건물의 감실{龕室}구조나 장식으로 사용했던 보주형감실{寶珠形龕室} 안에 부조한 부처님 일행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공양자들을 새긴 불상군이다. 중앙에는 부처님이 설법자세로 서 있는데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고 왼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짓고 왼손을 내려 옷주름을 잡은 당시 유행하던 부처님의 자유스러운 입상자세인 것이다. 큼직한 상투, 곱슬곱슬한 물결머리칼{彼狀髮}, 봉안에 매부리코와 아리안 풍의 고상한 얼굴, 유연한 신체의 자유분방한 자세 등 간다라 불상 양식 가운데서도 초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까운형의 대의{大衣}도 오른쪽으로 치우쳐 U자형으로 휘어져 내린 옷주름과 뒤집은 목깃 등 역시 간다라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묘사해 주고 있다. 부 문명대 | 호수 : 102 | 2007-12-03 00:00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2.돈황 제272굴 돈황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그림의 하나가 제272굴에 그려진 그림들로서 여기에 소개하는 이란 그림도 그중의 일부이다.이 그림은 중국 후량대(後凉代)에 속하는 기원후 5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알려졌다.후량(後凉 386-405, A. D)은 여광(呂光)이 전진(前秦)의 통치자였던 부견(符堅)의 명에 따라 서북(西北) 지역을 원정하여 개선하는 도중에 부견(符堅)의 패배를 알고 스스로 량천왕(凉天王)이라 칭한데서 비롯된 나라로 이른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이다.이렇듯 후량(後凉)의 단명(短命)한 흥망(興亡)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지 모르나 여광(呂光)의 전역(戰役)이 갖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는 문화교류의 측면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즉 위대한 역승(譯僧)인 구마라 문명대 | 호수 : 110 | 2007-11-02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끝끝
기사 (6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2.산치탑 ① 佛塔의 기원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자 당시 독실하게 불교를 믿던 8국의 왕들이 서로 사리를 가져가겠다고 다투는, 이른바 유명한 사리분쟁이 일어났는데 한 바라문의 중재로 여덟 나라에 공평하게 나누어 탑을 모시게 한 것이 부처님 근본 팔탑이다. 이들 근본팔탑이 피프라와나 바이사리의 폐탑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극본 팔탑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다. 8탑을 만든 후에도 부처님의 사리숭배는 더욱 퍼져서 탑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했지만 사리가 없으므로 사리대신 사리병을 넣고 탑을 만들었고[9번째탑], 화장 후의 재를 가지고 만들기도 하였으며, 머리칼이나 의발 등을 넣어서도 탑을 만들어 숭배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리를 넣어 만든 무덤적 문명대 | 호수 : 88 | 2007-12-03 00:00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16. 감실 부조 불상군 어느 건물의 감실{龕室}구조나 장식으로 사용했던 보주형감실{寶珠形龕室} 안에 부조한 부처님 일행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공양자들을 새긴 불상군이다. 중앙에는 부처님이 설법자세로 서 있는데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고 왼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짓고 왼손을 내려 옷주름을 잡은 당시 유행하던 부처님의 자유스러운 입상자세인 것이다. 큼직한 상투, 곱슬곱슬한 물결머리칼{彼狀髮}, 봉안에 매부리코와 아리안 풍의 고상한 얼굴, 유연한 신체의 자유분방한 자세 등 간다라 불상 양식 가운데서도 초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까운형의 대의{大衣}도 오른쪽으로 치우쳐 U자형으로 휘어져 내린 옷주름과 뒤집은 목깃 등 역시 간다라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묘사해 주고 있다. 부 문명대 | 호수 : 102 | 2007-12-03 00:00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2.돈황 제272굴 돈황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그림의 하나가 제272굴에 그려진 그림들로서 여기에 소개하는 이란 그림도 그중의 일부이다.이 그림은 중국 후량대(後凉代)에 속하는 기원후 5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알려졌다.후량(後凉 386-405, A. D)은 여광(呂光)이 전진(前秦)의 통치자였던 부견(符堅)의 명에 따라 서북(西北) 지역을 원정하여 개선하는 도중에 부견(符堅)의 패배를 알고 스스로 량천왕(凉天王)이라 칭한데서 비롯된 나라로 이른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이다.이렇듯 후량(後凉)의 단명(短命)한 흥망(興亡)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지 모르나 여광(呂光)의 전역(戰役)이 갖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는 문화교류의 측면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즉 위대한 역승(譯僧)인 구마라 문명대 | 호수 : 110 | 2007-11-02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