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와 풀
올해는 초여름까지 내내 가물었기에, 파종하여 자라났든 옮겨심기를 한 작물이든 물을 줘야 했습니다. 사계절 마르지 않고 흐르던 이곳 산중의 작은 계곡도 말라서 바닥을 보이니, 계곡 사이사이 웅덩이에 살던 물고기들이 말라 죽을 지경이라 지하수를 길어다 대주기까지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과 들에 깊이 뿌리내린 풀들조차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제초작업, 풀매기와 풀베기는 영 수월했습니다. 일이 수월하게 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하루 일하는 면적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등산하듯 타고 올라야 하는 비탈진 산의 풀을 치고, 단단히 박힌 돌들을 골라내며 풀을 매고, 하는 데까지 하기는 했는데, 끝내 지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지쳐 있을 무렵부터 마침, 하루걸러 하루씩 비가 내렸습니다. 한 며칠 내리다 말겠거니 했는데 늦장마가 됐습니다. 작물은 물론이거니와 더욱이 온갖 풀들은 제 생일 만난 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게으른 생각도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처음엔 아직 손볼 정도로 자라지 않았으니 좀 두었다 하자고 했다가, 풀들이 좀 자라났을 때도 비가 오락가락하니 비 그쳐서 풀이 말라야 손보지 하며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풀들은 웃자라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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