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습니다] 헐겁지도 조이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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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습니다] 헐겁지도 조이지도 않게
  • 윤남진
  • 승인 2022.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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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풀

올해는 초여름까지 내내 가물었기에, 파종하여 자라났든 옮겨심기를 한 작물이든 물을 줘야 했습니다. 사계절 마르지 않고 흐르던 이곳 산중의 작은 계곡도 말라서 바닥을 보이니, 계곡 사이사이 웅덩이에 살던 물고기들이 말라 죽을 지경이라 지하수를 길어다 대주기까지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과 들에 깊이 뿌리내린 풀들조차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제초작업, 풀매기와 풀베기는 영 수월했습니다. 일이 수월하게 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하루 일하는 면적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등산하듯 타고 올라야 하는 비탈진 산의 풀을 치고, 단단히 박힌 돌들을 골라내며 풀을 매고, 하는 데까지 하기는 했는데, 끝내 지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지쳐 있을 무렵부터 마침, 하루걸러 하루씩 비가 내렸습니다. 한 며칠 내리다 말겠거니 했는데 늦장마가 됐습니다. 작물은 물론이거니와 더욱이 온갖 풀들은 제 생일 만난 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게으른 생각도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처음엔 아직 손볼 정도로 자라지 않았으니 좀 두었다 하자고 했다가, 풀들이 좀 자라났을 때도 비가 오락가락하니 비 그쳐서 풀이 말라야 손보지 하며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풀들은 웃자라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밭고랑의 풀은 뽑기조차 힘들어 낫으로 베어야 할 지경이 되었고 뽕나무와 엄나무가 심어진 산야의 풀과 새로 난 나뭇가지들은 사람 키만큼 자라기도 했습니다. 지친 몸과 게을러진 마음을 추슬러서 작물이 심어진 밭고랑과 진입로 길가 정도의 풀을 겨우 제거하고는 곧바로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명절 연휴를 보내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 풀숲을 그대로 두고 내년 봄을 맞을 수는 없다는 결심으로 예초기를 멨습니다. 너무 무성해져 풀숲이 되었기에 한 번에 치면 될 일이 세 번에 걸쳐 쳐야만 정리되는 고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들뜨거나 방심하거나

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나, 왜 풀에 이토록 맥없이 손들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하고 요모조모 복기해 봅니다. 우선 역량의 인식과 안배에서 잘못이었습니다. 한창 힘쓸 나이 때처럼 종일 힘을 쓸 수 있을 것처럼 초동에 써 재끼다 보니 체력이 많이 고갈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풀들이 비를 맞으면서 다시 우썩우썩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이제 당해 내고자 하는 마음조차 힘겨워졌습니다. 처음 제초에 너무 힘을 뺀 상태라 풀의 거센 2차 도전 앞에 맥없이 주저앉은 것입니다. 기후의 변동과 그에 따라 생장을 조절해 가는 풀의 생리, 그것을 몸으로 터득하고 자신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맞추어 가는 지혜를 가진 나이 든 농부의 저력에 비하면 사뭇 미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 다음의 잘못은 제초작업, 특히 예초기로 풀베기 작업을 할 때 밑동 바닥까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너무 애를 썼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한 번 또는 두 번 더 쳐야 할 것이라면 좀 성글게 깎아도 될 것인데, 땅바닥에 박혀 있는 돌들에 깜짝깜짝 부딪혀 가면서까지 예초기를 바싹 들이대느라 너무 힘과 신경을 많이 썼던 것입니다.

“정진이 너무 조급하면 오히려 들뜸만 늘어나고, 정진이 너무 느슨하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중략…) 집착하지도 말고, 게으름을 짓지도 말고, 상(相)을 취하지도 말라” - 『잡아함경』 제9권 「이십억이경」

너무 자심하게 수행하는 소나에게 부처님께서 타이르신 말씀입니다. ‘비파줄을 고르게 해 헐겁지도 조이지도 않으면, 미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비유를 들며 주신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으로 올여름 제초작업의 실패에 견주어 봅니다. 풀을 너무 바싹 깎으려 한 것은 집착이나 상을 취한 것이요, 자기 힘에 버거움을 알면서도 일을 지나치게 벌인 것은 들뜬 것이요, 비가 오락가락할 때 아주 손을 놓아 버린 것은 방심하고 게으름을 피운 것이라고 할까요?

 

다만, 오늘 해야 할 일

“배우고 때맞추어(제때) 그것을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논어』 「학이편」 제1장 『논어』의 제일 첫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한자어 ‘학이시습(學而時習)’ 할 때 ‘시습(時習)’을 ‘때때로 익히다’라고 해석하기보다 ‘때맞추어 익히다’ 혹은 ‘제때 익히다’로 해석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됩니다. 풀과의 겨루기도 매한가지입니다. 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싹을 내밀 때는 얼른 긁개 같은 것으로 긁어 주어야 하고, 그때를 놓쳐 어지간히 자라났으면 뽑아 주어야 하고, 그때도 놓쳐 뽑기 힘들 정도로 무성해졌다면 베어 주어야 합니다. 하여튼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할 일들을 맞추어 찾아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풀과의 겨루기에서 패배한 사건을 돌아보니, 우선 일이 잘되어 가거나 그 반대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중도를 찾고 항상 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때를 알아보고 그런 때 혹은 기회를 자신을 단련시키는 정진의 계기로,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향상의 박차로 삼을 줄 아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에 담게 됩니다.

풀이 너무 무성해서 베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풀이란 놈은 베고 돌아서면 벌써 저만치 자라나 있는 것같이 질기고 드세다고 툴툴대자니 장모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풀이 종당 사람을 못 이겨….”

과연 그럴까요? 뒤늦게야 풀을 친다고 예초기를 걸쳐 메자 아내는 조만간 서리가 내리면 풀들은 모두 시들어 버릴 것인데 그냥 둬도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크게 자라 대가 굵어진 풀들은 서리를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굳게 서 있어 잘 썩지도 않습니다. “내년에 작업할 때 거치적거릴 것 같다” 답하며 늦은 풀베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시구를 되뇌며 기억합니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미래를 바라지 말라.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중략…)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에 부지런히 힘쓰라. 누가 내일 죽음이 있을지 알 것인가” 
- 『숫타니파타』  

 

윤 남 진
동국대를 나와 1994년 종단개혁 바로 전 불교사회단체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개혁종단 순항 시기 조계종 종무원으로 일했고, 불교시민사회단체 창립 멤버로 10년간 몸담았다. 이후 산골로 내려와 조용히 소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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