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진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기룡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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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진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기룡 불자
  • 유윤정
  • 승인 2018.05.04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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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선업善業을 쌓다

은퇴 후 선업善業을 쌓다

올해 우리나라 평균 퇴직 연령은 55세입니다. 향후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화두가 됩니다. 은퇴의 연령은 낮아졌지만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 우리 세대. 은퇴 후의 시간은 짧지 않았습니다. 불광이 만난 불자 은퇴자들은 언제나 활기 넘쳤습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에 누구에게도 소외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당당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알차고 여법했습니다. 은퇴 후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불자는 어떻게 은퇴 이후의 계획을 세우면 좋을까요. 설레는 인생 2막,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에게 선업을 쌓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01    교편 내려놓고 전통등 만드는 이정희 불자  김우진
02    사진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기룡 불자  유윤정
03    포교사로서의 삶 살아가는 정광성 불자  유윤정
04    정년을 앞둔 교수의 화두수행, 김종선 불자  김우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진 : 최배문

카메라를 메고 전국 특종 현장을 찾아 뛰어 다녔다. 30년 간 일간신문 사진기자로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는 그저 사건사고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2011년 사진기자로서 역할을 마무리한 후, 그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 불교를 만났다. 이기룡(71, 해륜) 씨의 이야기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미지컬럼니스트, 불교조계종 포교사 이기룡’. 조계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2시, 그는 카메라 가방을 매고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해 대웅전 부처님을 뵙고, 합장한 채로 탑을 한 바퀴 돌았다. 재킷 앞주머니에서 작은 향통을 꺼내 향공양을 올린 후였다.

 

|    바람의 언덕, 길 위의 풍경

불교 행사 현장에서 그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여전히 백발 흩날리며 행사 현장 맨 앞에서 종횡무진 취재하고, 구석구석 살핀 후 그곳의 공기를 갈무리해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사진과 함께 쓴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현장을 살폈는지 알 수 있다. 신문기사에서는 전부 알기 어려운 현장의 분위기와 소리가 생생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기룡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바람의 언덕, 길 위의 풍경(blog.naver.com/gainnal0171)’에는 불교 콘텐츠가 올라온다. 2011년 1월에 개설해 지금까지 8년간 누적 방문객 123만 3천 명 이상, 일 방문객 400~500명인 유명 블로그다. 지금까지 쓴 글만 2,280개 이상, 일주일에 최소 2~3개 기사가 발행된다. 기사는 불교행사, 불교문화를 비롯해 사회적 이슈, 한시, 봉사 활동, 여행기 등 다양한 주제로 이 씨의 눈으로 가감 없이 바라본 알찬 정보를 싣는다.

“2010년 말 사진기자로 은퇴를 앞에 두고서, ‘앞으로 남은 생,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새롭게 그려나갈까’ 고민하던 것이 블로그의 시작이었습니다.”큰 아들이 쓰던 컴퓨터를 빌려서 12월부터 준비했다. 계획은 1월 1일부터 글을 올리는 것이었지만 쉽진 않았다. 반나절에 걸쳐 쓴 글을 잘못 눌러 한순간에 날리는 일이 다반사. 겨우, 2011년 1월 24일 첫 글을 발행했다.

“블로그에 첫 글이 성공적으로 올라갔을 때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요. ‘됐구나!’ 하곤 신이 나서 혼자서 춤을 췄습니다.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지인들이 ‘그게 되겠어?’ ‘누가 보러 오겠어?’ 하며 괜한 헛수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려 만든 블로그가 아니라 내 시간을 보내려고 시작한 블로그였습니다. 어찌나 기쁘던 지요.”

처음부터 불교를 전하려 만든 블로그는 아니었지만, 은퇴 후 접하게 된 불교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목적 자체를 바꿀 만큼 강력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이나 글에서 꼭 부처님을 지칭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봤을 때 불교라고 생각하게 하는 게 블로그의 지향점이 되었습니다. 불교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은 불자인 것 같아’ 하고 생각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불교적 정서를 바탕으로 깔고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블로그에 들린 이들이 ‘아무리 봐도 불자 같아’ 하며 알게 모르게 포교하는 일,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의 언덕, 길 위의 풍경’은 신문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불교행사와 불교문화를 만날 수 있는, 불교 콘텐츠를 다루는 1인 매체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글 한 편 올리는 데 두세 시간이 걸리고, 하루 대부분을 블로그를 생각하며 보내지만 블로그는 삶을 활기차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불교는 백수의 마음을 지탱해준 힘

“은퇴 후 삶은 상당히 소프트 랜딩Soft landing 했다고 생각해요. 불교를 배우지 않았으면 은퇴 후 8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습니다.”

그는 불교를 알게 되어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 불교와의 본격적 인연은 퇴임 후, 문득 봉은사에 들르면서부터다. 그때는 삼귀의도 모르고, 일주문 정도만 알던 때였다. 절을 찾아가던 날, 잘은 모르지만 향도 하나 꽂아보고, 대웅전 들어가 무릎도 꿇어보고 앉아도 봤다. 심란했던 마음이 차츰차츰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잔잔하게 안정됐다. 

길상사 일주문을 보고는 번쩍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일주문에는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라 쓰여 있었다.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와라. 이거다 싶었다. ‘그동안 내가 사건사고로 알고 있던 불교는 갠지스 강의 모래 한 알 같은 것이었구나. 불교에는 아주 깊은 가르침이 있구나.’ 불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 최배문

집과 가까운 봉은사에 신도 등록을 하고, 기초학당, 불교대학, 경전 아카데미 등 강좌를 들으며 공부했다. 함께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포교사도 되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 기수 포교사들이 응원해주고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며 19기 조계종 포교사가 되었다. 불교가 자신의 삶과 코드가 맞는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퇴직을 하고 나면 많은 이들이 등산을 합니다. 하지만 등산도 몇 달이지, 오래 하기는 어려워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친구가 적은 사람들은 일주일이면 끝이 납니다. 매일 만날 수도 없지요. 저는 바둑이나 장기를 둘 줄 모르니 공원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행활동을 하니, 봉사활동을 하니 갈 곳이 있습니다. 하루에 일과가 있다는 것은 백수로서 엄청 큰 행복, 평화입니다. 청춘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감옥 같아요. 제가 불교를 만나지 않고 퇴직 이후 8년을 버텼다면 아마 지옥 같았을 것입니다.”

불교는 활동 반경까지 바꾸어 놓았다. 불교 행사가 있는 날에는 달력에 적어놓고 취재를 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포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했다. 블로그에도 ‘늘어난 40년이 행복하려면 자원봉사가 답이다’라는 글을 쓸 만큼 자원봉사에 힘썼다. 요즘은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홍보팀에서 활동하며 온라인카페 등에 서울지역단의 활동을 기록하고, 북한이탈주민의 국내정착을 돕는 활동과 불광사 탈북민 법회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봉은사에서는 ‘새신도 입문교육’을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2014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는 봉은사보 「판전」의 기자로도 활동했었다. 그는 ‘봉사는 내가 즐기면서, 함께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라 했다. 불교계 밖에서도 재능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강남 시니어플라자 미디어팀에서 재능봉사를 하는 중이다. “은퇴 후에 더 바쁘게 사시네요” 하고 말을 건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퇴직한 사람한테 큰일을 누가 주겠습니까. 지금 당장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옛날 대접을 생각하며 일한단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이렇게 포교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절과 불교는, 제 마음, 백수의 마음을 지탱해준 힘입니다.”

 

|    안다고 생각한 걸 내려놓고 문 안으로 들어오라

사진 : 최배문

이 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불교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음을 알게 되고,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심下心은 지금 자신을 세우는 힘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내가 더 잘 안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입니다. 살아온 경험으로 보면, 우리가 일을 할 당시에는 선배가 후배보다 뭐라도 하나 더 아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선배기자가 골목길 하나라도 더 잘 아는 등이요. 하지만 요새는 어린 친구들이 인터넷 보고 더 잘 찾아갑니다. 그러니 그 방식을 강요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심下心, 마음을 내려놓으면, 세상에 있는 일들이 거슬리지 않아요. 자기 욕심이 있다면 보이는 것마다 적대적이 됩니다. 갈등과 충돌로 이뤄지는 화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 내려놓으면, 나부터가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편안해지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씨는 ‘모든 것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행본처行行本處,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표현을 썼다.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發處,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두 문구를 조합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을 더했다.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뺑뺑 돌아봐도 결국은 그 자리, 그렇다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주인이 되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걱정보단 먼저 시도해보는 당당함. 그렇게 해서 잘 하면 기분 좋은 것이고 잘 못 하더라도 주인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일이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가 생활 목표가 되었다. 그에게 불교는 인생 제2막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게 한 아이템이었다.

“살아보니, 꽃피고 업적을 세우는 일만 있는 세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갈등, 다툼, 충돌도 있기 마련이지요. 내 마음 편안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가 사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아직은 꿈도 못 꾸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불교를 만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불자라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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