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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편을 내려놓고 연등을 만드는 이정희 불자은퇴 후 선업善業을 쌓다

은퇴 후 선업善業을 쌓다

올해 우리나라 평균 퇴직 연령은 55세입니다. 향후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화두가 됩니다. 은퇴의 연령은 낮아졌지만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 우리 세대. 은퇴 후의 시간은 짧지 않았습니다. 불광이 만난 불자 은퇴자들은 언제나 활기 넘쳤습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에 누구에게도 소외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당당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알차고 여법했습니다. 은퇴 후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불자는 어떻게 은퇴 이후의 계획을 세우면 좋을까요. 설레는 인생 2막,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에게 선업을 쌓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01    교편 내려놓고 전통등 만드는 이정희 불자  김우진
02    사진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기룡 불자  유윤정
03    포교사로서의 삶 살아가는 정광성 불자  유윤정
04    정년을 앞둔 교수의 화두수행, 김종선 불자  김우진

기도하고 나누는 삶, 매일이 기적입니다

겨울이 끝난 듯 오랜만에 따뜻한 날이었다. 수원시 팔달구의 수원사(주지 세영 스님)를 찾았다. 청명한 하늘과 눈부신 햇살, 차갑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보살님 한 분이 인사를 건넸다. 이정희(65) 씨다.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해 몇몇 분들과 함께 사중에서 등을 만들고 있었다. 풀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길을 안내했다. 

 

|    부처님 법 만나서 잘 살고 있구나

사진 : 최배문

수원 영복여자고등학교와 영복여자중학교를 오가며 한 직장에서 40년 세월을 보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교직에서는 교장선생님의 위치에서 관리자 임무까지 완수하며 학생들을 위하여 더 좋은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성취했지만, 사회에서의 활동은 그만큼 힘이 들었다.

“은퇴를 하고 나니 정말 행복합니다. 그 전에는 계속해서 무언가 이뤄야했습니다. 늘 일에 쫓겼었죠.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남에게 일을 맡기지 못했습니다. 밤을 새면서까지 완벽하게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았어요. 또 교사로 생활할 때는 늘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교장의 역할을 할 때는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어떠한 강박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반듯하고 정갈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몸이 늘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은퇴를 한 이후에는 그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뤄야할 것도 없었고, 쫓기지도 않았다. 마음이 편해지니 몸도 편해졌다.  

이 씨는 은퇴를 앞두고 사찰에 자주 다니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기로 정했다. 기초교리도 다시 공부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법회에도 많이 참여하기로 생각했다. 그렇게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결정하고 맞이한 은퇴. 그는 가장 먼저 짐정리와 주변 정리를 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나누고 비우고 덜어냈다. 후배들에게 물어 필요한 물품을 나눴다. 특히 단정한 정장들로 가득했던 옷장을 말끔히 비웠다. 그는 교편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미술 전공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전직을 살리기로 했다. ‘청정회’라는 등 만들기 반을 구성했다. 서울 조계사까지 다니며 몇 차례 전통등 만드는 연수를 받았다. 집에서도 혼자 수없이 연습했다. 특히 철사 프레임에 배접을 하는 과정이 낯설어 처음에는 무던히 애를 썼다. 그렇게 함께 하는 회원들에게 조심스레 배운 것을 알려주고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해 온 것이 올해로 4년째다. 

은퇴 후 이 씨는 수원사에서 전통등과 행렬등, 장엄등 등 사중에 있는 대부분의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더불어 초하루와 보름 법회의 진행도 맡아서 사중에서 봉사와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가까이서 저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제가 법당에 다니며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나 봐요. 하루는 집에서 등을 채색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옆에 앉아 ‘점점 단아해져서 보기가 좋네’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남편이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서 종교가 다른데, 제가 종교활동 하는 것을 이해해주고 저를 지지해주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딸아이도 저로 인해 불교에 호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잘 살고 있구나’ 느낍니다.”

 

|    교편을 놓고 마주한 등 만들기

교편을 내려놓을 때는 정말 홀가분했다. 40년 간 있었던 곳에 발을 빼며 소속된 곳이 사라진 것이 약간 허전했지만, 그와 반대로 40년 간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이뤘다. 은퇴가 반가웠던 또 다른 이유는 자신보다 훌륭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며 “우리 세대의 선생님들은 빨리 교직에서 나왔어야 한다”는 그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는 옳다’는 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은퇴한 우리 세대가 학교를 다니며 보고 배운 것은 ‘스승의 말대로 따라가는 것’이었고, 무척이나 수직적인 가르침이어서 그런지 아상이 더 짙은 것 같아요. 돌아보면 좋은 교육이 아니고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기에 빨리 세대교체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훌륭한 스승이 될 수는 없었을까’ 후회가 듭니다.” 

그와 함께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중하며 훌륭한 선생님으로 살고 싶다. 아쉬움이 많아서, 후회가 남아서, 오히려 그런 미련들과의 작별이기에 은퇴가 홀가분했었나보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생활이었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더라고요. 또 옛 생각을 하면 ‘내가 스승으로써 아이들을 그릇되게 가르치지는 않았나?’ ‘그래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지금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정희 씨는 다른 회원들에게 전통등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때도 항상 다짐을 되새긴다. ‘함부로 가르치지 않겠다’는 다짐. 수원사에서 새롭게 등 만들기 모임을 구성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새긴 말이다. 
‘청정회’라는 전통등 만드는 반을 새롭게 구성하며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자신은 더 바르고 더 잘해야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통등을 만들고 사찰에서 봉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이 모습을 바라보니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더욱 절실히 느껴졌어요. 남을 가르치기 전 스스로를 살피게 되었고, 그림에 대한 공부도 새롭게 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참 고마우면서도 부족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오다

이 씨는 아침에 일어나 늘 하루가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린다. 은퇴 이후에는 옛 생각이 많이 나고 부처님과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감사하죠. 모태신앙으로 불교를 넘겨주셨잖아요. 저희가 딸만 다섯인 가정이었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모두 불교신자로 자랐어요. 만나서 이야기 할 때마다 서로 부처님 말씀을 나누고, 또 좋은 경전과 책을 소개합니다. 자매가 친구 같기도 하며 함께 수행하는 도반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저에게 친정과 같아요. 어머니 손잡고 절에 오던 때가 늘 생각납니다.”

이정희 씨는 앞으로 미술치료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미술치료를 연계하여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상담을 해주고 싶다”는 그다. 마음이 병들어 힘들어하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사찰에서 미술을 통해 마음치료를 하고 싶은 생각이다. 봉사와 신행, 보살행을 이어가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은퇴 전에 제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해보니 제가 그동안 받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 아래서 아픈 곳 없이 살아온 것도 기적이고, 오랜 기간 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사고 없이 정년으로 은퇴하는 것까지 넘치게 많은 복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아마도 전생에 지은 많은 복을 그 동안 다 쓴 것 같아서 은퇴 후에는 봉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복을 지으려고요.(웃음)”

청정회가 등을 만드는 작은 공간에 풀 냄새 가득했다. 몇 번이나 매만졌을지 모를 연등의 한지가 반질반질하다. 이 씨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올해도 그의 손길이 닿은 연등이 부처님 오신 날 환하게 밝혀질 것이다.

“제 삶은 지금까지 모두가 기적입니다. 매번 좋은 인연을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를 만나서 그 향이 제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이 가피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김우진  kimwj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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