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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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 박보람
  • 승인 2023.07.06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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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03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저작·역자 박보람 정가 16,000원
출간일 2023-07-23 분야 동양철학, 사상
책정보

판형 4*6판 (125 × 185mm) | 10mm | ISBN 979-11-92997-46-9 (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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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 세 번째 책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모든 존재가 자신의 참모습대로

고통 없이 살아가게 하는 가르침

“『화엄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이 부처님임을 알고서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나’의 참모습을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로 바르게 봄으로써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것을 말하는 수많은 불교 경전 중에서도 『화엄경』은 그렇게 찾아낸 ‘나’의 참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처님’이라고 말한다. 왜, 어떻게 ‘나’가 부처님이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경전이다.

『화엄경』은 화엄 사상의 근간이 되는 경전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누구든 의지해야 할 수행의 지침이자 삶의 근거로 삼는 경전이기도 하다. 대승 경전 중에서도 규모가 매우 큰 축에 속하는 만큼 원전을 접하기가 부담스러운 『화엄경』이지만, 공학을 전공하다 불교학으로 관심사를 옮겨 화엄 사상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불교 철학을 가르치게 된 저자가 쉽게 풀어내는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암호 같기만 한 『화엄경』의 속뜻이 어느새 우리의 삶에 녹아난다.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

종교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불교 경전의 담백하고도 깊은 성찰이 담긴 구절에 고개를 끄덕여 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관심으로 한 번 읽어 볼까 싶어 그 구절이 나왔다는 경전이나 해설서를 찾아봤다가, 낯선 용어와 난해한 해설은 물론 부담스러운 분량으로 인해 다시 내려놓은 적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을 얻으려는데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한자어와 알 듯 말 듯한 선문답에 오히려 더 고통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이들을 위해 불교 경전의 핵심적인 내용만 쏙쏙 뽑아내 쉽고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경전 소개서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가 출간됐다.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가벼운 크기로 언제든 부담 없이 집어들 수 있다. 불교 경전을 읽어 보고 싶었으나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몰랐던 입문 독자, 경전을 읽어 보긴 했는데 영 낯설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문학 독자들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박보람

충북대 철학과 부교수.

『화엄경』과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화엄종의 사상이 주된 공부 분야이다. 특히 한국 불교의 주축을 이루는 의상 스님과 그 법손들이 이야기하는 지금, 여기의 '나'가 조금도 모자람 없는 여래라는 여래출현설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1년 동국대에서 「화엄교의 일체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번뇌를 끊음이라는 번뇌를 끊음 없다는…… ‒의상화엄의 단혹설‒」, 「‘불교’란 무엇인가?-초기화엄교학의 교체설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차 위로

들어가며

1. 『화엄경』을 우리는 왜 알아야 할까

왜 『화엄경』일까

불교의 목표와 방법과 내용

불설과 설불

덮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 책이 의지하는 곳

2. 『화엄경』은 왜 만들어졌을까

『화엄경』은 무엇일까

언설 『화엄경』

‘나’의 참모습 – 유심

3.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는 것

『화엄경』의 편찬

보석함과 똥통

세계의 참모습, 법계연기

믿음과 초발심

여래출현인 서원

서원의 시작과 끝 - 『화엄경』 읽기

4. 『화엄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업(業)에서 원(願)으로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화엄경』

상세소개 위로

이 책은 불교 입문자와 인문학 독자를 위해 불교 경전의 핵심적인 내용만 쏙쏙 뽑아 쉽고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화엄경』은 경전명 그대로 온갖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세계를 설하는 경전이다. 그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하지만 그 세계를 확인하기 위해 방대하고도 어렵게 느껴지는 『화엄경』 원전을 용기 있게 들추기는 부담스러울 터. 이 책은 화엄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이자 고통을 여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의 첫걸음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여기의 ‘나’를 포함한 온 세계는

모두 부족함이 없는 부처님이다

보통 대승 경전에 ‘불설(佛說)’, 즉 ‘부처님이 설하는’이란 표현이 붙는 것과 달리 『화엄경』은 ‘설불(說佛)’을 붙여 설불 경전이라 불린다. 부처님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제자들에게 설하는 『금강경』이나 『법화경』과는 달리 이 경전은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그 주변의 세계, 즉 불세계(佛世界)가 어떠한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른 깨달음’, 즉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 된 존재에게는 ‘나’와 ‘너’, ‘부처님’, ‘중생’과 같은 구별이 없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사태라는 지각이 생긴다. 따라서 ‘나’의 본모습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불교에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 완전한 부처님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과 다르다. 『화엄경』은 ‘나’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저자는 이런 점에서 다른 경전들과 구분되는 『화엄경』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작은 티끌 속의 거대한 우주,

그 우주를 담은 지혜의 경전

전설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큰 인물인 용수보살이 용궁에 갔을 당시 세 종류의 『화엄경』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중‧하본의 세 가지 『화엄경』 중에 상본과 중본은 분량이 너무나 방대하여 인간 세계에 가져올 수 없었고, 그나마 가장 짧은 하본을 외워 인도에 전한다. 그 10만 게송의 하본 중에서도 3만 6천 게송 분량이 동아시아에 전래되어 한문으로 번역되고, 바로 이 버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화엄경』의 기초가 된다.

한편 『화엄경』 「여래출현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큰 경전이 있어 분량이 온 우주와 같고 온 우주에 있는 일이 다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경전은 아주 작은 티끌 속에 들어있어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는 즉시 작은 티끌을 깨뜨리고 이 큰 경전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였다.’ 이 구절은 우리 모두 부처님의 속성,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번뇌에 뒤덮여 부처님으로서 살아가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용궁에 감춰져 있던 『화엄경』을 용수 보살이 지상으로 전했듯이, 우리는 ‘나’ 안에 숨겨져 있는 부처님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 지혜가 담긴 『화엄경』을 읽어나가는 방법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위로

만약 여러분이 ‘행복’을 ‘나의 이익’으로 삼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2,500여 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사람이 걷고자 했으며, 스스로 개척해 간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길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하고자 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어 이룬 것은 오직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 15쪽

불교의 시선에서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은 여러 종류의 고통이 폭류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의 ‘나’가 목표로 해야 할 궁극의 행복은 어떤 감각적 쾌락으로 고통을 무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여의는 것이지요. - 16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참모습을 여실히 알아 모든 고통을 여읜 부처님은 지금, 여기의 ‘나’,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이 『화엄경』이 바라보는 ‘나’이자 ‘부처님’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하루하루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 ‘나’가 바로 부처님이라니요? - 22쪽

초기 화엄교학에서는 형태나 매체 등과 관계없이 ‘나’의 참모습을 여실히, 모자람 없이 설하여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참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라면 그것이 바로 『화엄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원교(圓敎)’라고 일컬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나’의 참모습은 바로 조금도 모자람 없는 부처님이라는 것이지요. - 36쪽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나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부처님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른 불교와 달리 『화엄경』은 ‘나’가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써 중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 59~60쪽

‘나’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과거에 매달리고 현재에 집착하며 미래를 걱정합니다. 또 나는 여기에 갇혀서 거기에 이르지 못하여 시방세계에 두루하지 못합니다. 또 나는 ‘나’에 매달리느라 ‘너’를 밀어내고 ‘부처님’을 존경하며 ‘중생’을 깔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에 의거한 것일까요? - 103~104쪽

상즉상입의 관점에서 ‘나’와 이 세계, 여러분의 참모습을 관찰한다면 ‘나’는 곳 여러분이고 여러분은 곧 ‘나’입니다. ‘나’에게 여러분이 존재하고 여러분에게 ‘나’가 깃들어 있지요. 따라서 ‘나’라고 하는 그 순간에, 그곳에, 그 생각에 여러분이 존재하며 그 순간이, 그곳이, 그 생각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나아가 이 세상 전부입니다. 이런 까닭에 상즉상입이라면 ‘나’는 결코 여러분과 다른 ‘나’일 수 없으며 이 세상의 총합이 바로 ‘나’입니다. - 122쪽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른다면 『화엄경』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배워서 그전까지 없었던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아니었던 어떤 존재나 상태가 되라고 말하는 경전이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화엄경』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경전입니다. “‘나’가 온전한 부처님”임을 믿으려는 서원을 일으켜서 부처님이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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