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40년 만에 들리는 탄허 스님의 육성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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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40년 만에 들리는 탄허 스님의 육성 법문
  • 최호승
  • 승인 2023.06.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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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스님 ⓒ월정사성보박물관
탄허 스님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이 있었습니다. 지금 말로는 ‘꼰대’라고 부르겠지만, 시대가 나아갈 방향과 삶의 지혜를 일러주는 큰 어른들이었습니다. 때론 스님들이 때론 학자들이 때론 정치가들이 그런 분들이었죠. 지금 소개하려는 큰 어른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십니다.

‘탄허(呑虛)’. ‘허공을 삼키다’라는 뜻의 법호 두 글자면 충분했습니다. 시대는 법호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 함석헌 선생은 동양 사상을 묻고자 아침부터 대원암 일주문을 넘었고, 자타공인 천재 양주동 박사는 『장자』를 듣고자 오대산 월정사로 찾아갔습니다.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의 큰 어른 성철 스님도 방산굴에 보름 동안 머물면서 학인스님을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탄허 스님이 입적하자 조사(弔詞)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유불선(儒佛仙)을 하나로 꿰뚫은 ‘탄허(呑虛)’라는 법호가 시대의 선각자로 통했습니다.

2023년은 탄허(1913~1983) 스님의 탄신 110주기이자 열반 40주기입니다. 탄허 스님이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고 열반하신 후 스님의 알맹이인 사상과 가르침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방향타를 잡고, 인생의 스승이 될 지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으니까요.

시대의 선각자를 되살리는 일은 거룩했습니다. 수많은 학술대회가 열렸고, 월정사 등 스님과 인연 깊은 사찰에서는 추모 다례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스님과 일생과 사상을 곱씹었습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에서 ‘탄허’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60권 안팎의 책들이 검색됩니다. 더러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가적 기질에, 더러는 현대인들에게 동양 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인생의 지혜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은 스님의 살아생전 생생한 육성 법문이라는 점에서 결이 사뭇 다릅니다.

탄허 강설·이승훈 주석·월정사 후원 | 504쪽 | 35,000원
탄허 강설·이승훈 주석·월정사 후원 | 504쪽 | 35,000원

이 책은 근 40년간 수백 개의 테이프에 채록된 채 아직 세상 빛을 보지 못한 탄허 스님의 육성 법문을 되살렸습니다. 강설 중에 ‘간추린 법문’ 제목의 파일들을 녹취하고 주석을 달아 문자로 복원한 것인데요. 『주역』은 물론 『논어』, 『맹자』, 『도덕경』 등 여러 고전과 『치문』, 『서장』, 『선요』, 『도서』의 핵심을 가르는 탄허 스님의 강설을 5개의 장으로 나눠 수록했습니다.

특히 탄신 110주기 열반 40주기에 문자로 들려오는 탄허 스님의 생생한 육성 법문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구어와 사투리를 의미가 통하는 범위 안에서 가급적 채록해 탄허 스님 말투와 강의의 현장감을 살렸습니다. 간혹 인용하는 출처 불명의 고전을 찾아내서 원고에 반영하고, 강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설화 및 개념 등은 1,042개의 친절한 각주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선(禪)의 정수를 일러주는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이 더 명쾌해진 이유라고나 할까요?

자칫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공자 가라사대, 부처님 가라사대 하는 게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소용이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일러줄 지혜는 밤하늘의 별처럼 변치 않고 빛나기 마련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의 명문장을 빌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탄허 스님의 명료한 가르침이 곳곳에서 보석처럼 빛납니다. 스승과 제자는 물론 진정한 친구와의 관계부터 죽음, 근거 없는 의심의 폐해, 어진 군주의 도리, 운명을 개척하는 기개 등 유불선의 가르침을 통으로 풀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대의 큰 어른이 없다고 말하는 요즘, 이 책 한 권의 가치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술이부작(述而不作,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 학자의 겸손과 객관적 태도)’을 실천한 탄허 스님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탄신 110주기 열반 40주기에 나온 책인 만큼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밤하늘의 별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몇만 몇억 광년의 시간이 지난 뒤라고 하죠? 몇만 몇억 광년 전에 이미 출발한 별빛이 별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보이는 거라고 합니다. 앞이 캄캄하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책을 소유하셨다면 이미 탄허 스님의 지혜가 밤하늘 별빛처럼 빛의 속도로 당신을 향해 오고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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