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이여,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좀 비추어 주옵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전주 장에 계시나요?
진데를 디디실까 걱정입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무데나 짐 부리고 편히 쉬소서
가는 길에 날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장삿길에 나선 남편,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의구심도 일어
안절부절 못하는 여인.
그래도 그리운 남편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백제 정읍 여인의
정념어린 노래,
정읍사(井邑詞)!
![](/news/photo/202302/38098_21741_4524.jpg)
태인 피향정(披香亭)은 정자의 아래와 위쪽에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 있어 그 향기를 쐰다는 뜻에서 이름을 얻었다.
보물이지만 윗쪽 연못은 없어졌다.
![](/news/photo/202302/38098_21742_4550.jpg)
12당산이 남아있는 백암마을 입구에는 제의를 올리는 당산나무와 미끈하게 다듬은 남근석이 남아있다.
매달아 놓은 고추가 풍요로운 수확을 상징한다.
![](/news/photo/202302/38098_21743_4618.jpg)
당산나무 옆의 할머니 장승.개울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장승과 마주 서서 물따라 들어오는 재앙을 막는다.
수구(水口)막이 장승이라 부르기도 한다.
![](/news/photo/202302/38098_21744_4653.jpg)
좀 더 우락부락한 할아버지 장승은 논 한가운데 있었으나 이제 단도 만들고 안내판도 세웠다.
할아버지 장승에 빌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속설이 있다.
![](/news/photo/202302/38098_21745_4739.jpg)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8곳 중 하나가 바로 정읍 무성서원이다.
강당은 1825년 불타버려 1828년에 중건하였다.
뒷쪽이 사당이다.
![](/news/photo/202302/38098_21746_489.jpg)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숙종 22년(1696)에 무성(武城)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유학자의 효시인 최치원을 향사한다.
![](/news/photo/202302/38098_21747_4835.jpg)
산외면 오공리의 김명관(1755~1822) 고택도 볼만하다.
전에는 김동수 고가라고 불렀다.
뒷산이 청하산인데 지네를 닮았다 해서 지네산이라 부른다.
![](/news/photo/202302/38098_21748_498.jpg)
이 집은 김명관이 17세부터 짓기 시작해 12년 만에 완공했다.
소슬대문 정면으로 담이 막혀 있다.
오른쪽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사랑채의 측면이다.
![](/news/photo/202302/38098_21749_4934.jpg)
왼쪽으로는 바깥 행랑채와 초가를 덮은 외양간이 있다.
그 사이를 통과하면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사랑 손님과 안채 손님이 다른 길로 나뉜다.
![](/news/photo/202302/38098_21750_503.jpg)
바깥 사랑채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게 균형을 이룬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앞쪽으로 너른 툇마루가 있고 대청은 들어열개문을 달아 궂은 날씨에 대비했다.
![](/news/photo/202302/38098_21751_5031.jpg)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기다란 안행랑채의 중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ㄷ"자 안채가 마주한다.
특이하게 앞쪽으로 튀어나온 두 곳이 부엌이다.
![](/news/photo/202302/38098_21752_5057.jpg)
안채의 대청도 사랑채처럼 툇마루와 들어열개문을 설치했다.
추녀 위 바래기기와는 조선시대 양식이다.
신라의 도깨비기와가 이제 눈과 코만 겨우 남았다.
![](/news/photo/202302/38098_21753_5124.jpg)
어두운 부엌에 햇빛도 들이고 연기도 빠져나가게 설치한 살창도 한껏 멋을 내었다.
다락에도 바깥쪽으로 쪽문을 달아 환기할 수 있도록 했다. 세심하다.
![](/news/photo/202302/38098_21754_532.jpg)
안 사랑채도 그 규모가 남다르다.
안채 손님이 묵기도 하고 해산하러 온 딸들이 아이를 낳기도 하는 공간이다.
넓은 툇마루는 어느 건물에나 있다.
![](/news/photo/202302/38098_21755_5333.jpg)
안 사랑채 옆의 협문으로 나가면 김명관의 둘째 아들이 지었다는 고택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연석 막돌을 쌓은 담장에 기와조각 꽃문양으로 멋을 냈다.
![](/news/photo/202302/38098_21756_543.jpg)
대문 밖의 초가집은 바깥에 사는 노비들이 주인댁을 지키며 사는 집이다.
그래서 "호지(護持)집"이라 한다.집 주위로 모두 여덟 채가 있었다고 한다.
![](/news/photo/202302/38098_21757_5423.jpg)
집 앞쪽의 연못은 원래 기다란 형태였다고 한다.
지네가 지렁이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뜻이다.
동네 이름도 원래 오공리(蜈蚣里),지네동네다.
![](/news/photo/202302/38098_21758_5450.jpg)
오공리는 뒷날 오공리(五公里)로 바뀌였다.
1980년대 이전에 찍은 김명관 고택. 초가집들이 고택을 둘러싸고 있고 동진강 상류가 느긋하게 흘러간다.
![](/news/photo/202302/38098_21759_5526.jpg)
단풍철은 아니지만 정읍에 온 김에 내장사도 들려본다.
일주문에서 절로 이어지는 단풍터널은 이미 명품숲으로 등재되었다.
그 눈길도 한번 걸어볼만 하다.
![](/news/photo/202302/38098_21760_5554.jpg)
내장사 극락전 뒤로 보이는 서래봉.
길게 치솟은 암벽이 마치 농기구 써레와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그 아래 벽련암의 풍치가 정말 뛰어나다.
글,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