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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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정읍
  • 노승대
  • 승인 202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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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이여,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좀 비추어 주옵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전주 장에 계시나요?
진데를 디디실까 걱정입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무데나 짐 부리고 편히 쉬소서
가는 길에 날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장삿길에 나선 남편,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의구심도 일어
안절부절 못하는 여인.
그래도 그리운 남편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백제 정읍 여인의
정념어린 노래,
정읍사(井邑詞)! 


 

태인 피향정(披香亭)은 정자의 아래와 위쪽에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 있어 그 향기를 쐰다는 뜻에서 이름을 얻었다.
보물이지만 윗쪽 연못은 없어졌다.

 


 

12당산이 남아있는 백암마을 입구에는 제의를 올리는 당산나무와 미끈하게 다듬은 남근석이 남아있다.
매달아 놓은 고추가 풍요로운 수확을 상징한다.

 


 

당산나무 옆의 할머니 장승.개울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장승과 마주 서서 물따라 들어오는 재앙을 막는다.
수구(水口)막이 장승이라 부르기도 한다.

 


 

좀 더 우락부락한 할아버지 장승은 논 한가운데 있었으나 이제 단도 만들고 안내판도 세웠다.
할아버지 장승에 빌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속설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8곳 중 하나가 바로 정읍 무성서원이다.
강당은 1825년 불타버려 1828년에 중건하였다.
뒷쪽이 사당이다.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숙종 22년(1696)에 무성(武城)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유학자의 효시인 최치원을 향사한다.

 


 

산외면 오공리의 김명관(1755~1822) 고택도 볼만하다.
전에는 김동수 고가라고 불렀다.
뒷산이 청하산인데 지네를 닮았다 해서 지네산이라 부른다.

 


 

이 집은 김명관이 17세부터 짓기 시작해 12년 만에 완공했다.
소슬대문 정면으로 담이 막혀 있다.
오른쪽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사랑채의 측면이다.

 


 

왼쪽으로는 바깥 행랑채와 초가를 덮은 외양간이 있다.
그 사이를 통과하면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사랑 손님과 안채 손님이 다른 길로 나뉜다.

 


 

바깥 사랑채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게 균형을 이룬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앞쪽으로 너른 툇마루가 있고 대청은 들어열개문을 달아 궂은 날씨에 대비했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기다란 안행랑채의 중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ㄷ"자 안채가 마주한다.
특이하게 앞쪽으로 튀어나온 두 곳이 부엌이다.

 


 

안채의 대청도 사랑채처럼 툇마루와 들어열개문을 설치했다.
추녀 위 바래기기와는 조선시대 양식이다.
신라의 도깨비기와가 이제 눈과 코만 겨우 남았다.

 



 

어두운 부엌에 햇빛도 들이고 연기도 빠져나가게 설치한 살창도 한껏 멋을 내었다.
다락에도 바깥쪽으로 쪽문을 달아 환기할 수 있도록 했다. 세심하다.

 


 

안 사랑채도 그 규모가 남다르다.
안채 손님이 묵기도 하고 해산하러 온 딸들이 아이를 낳기도 하는 공간이다.
넓은 툇마루는 어느 건물에나 있다.

 


 

안 사랑채 옆의 협문으로 나가면 김명관의 둘째 아들이 지었다는 고택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연석 막돌을 쌓은 담장에 기와조각 꽃문양으로 멋을 냈다.

 


 

대문 밖의 초가집은 바깥에 사는 노비들이 주인댁을 지키며 사는 집이다.
그래서 "호지(護持)집"이라 한다.집 주위로 모두 여덟 채가 있었다고 한다.

 



 

집 앞쪽의 연못은 원래 기다란 형태였다고 한다.
지네가 지렁이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뜻이다.
동네 이름도 원래 오공리(蜈蚣里),지네동네다.

 


 

오공리는 뒷날 오공리(五公里)로 바뀌였다.
1980년대 이전에 찍은 김명관 고택. 초가집들이 고택을 둘러싸고 있고 동진강 상류가 느긋하게 흘러간다.

 


 

단풍철은 아니지만 정읍에 온 김에 내장사도 들려본다.
일주문에서 절로 이어지는 단풍터널은 이미 명품숲으로 등재되었다.
그 눈길도 한번 걸어볼만 하다.

 


 

내장사 극락전 뒤로 보이는 서래봉.
길게 치솟은 암벽이 마치 농기구 써레와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그 아래 벽련암의 풍치가 정말 뛰어나다.

 


글,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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