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가한 미국 절이 화려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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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출가한 미국 절이 화려하지 않은 이유
  • 현안 스님
  • 승인 2022.0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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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29)]

 

만불성성 전경 사진. 출처 만불성성 홈페이지

오늘은 제가 출가한 위산사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그 이야기에 앞서 먼저 미국 만불성성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미국엔 만불성성(萬佛聖城, City of Ten Thousand Buddhas)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선화 상인의 본사 사찰입니다. 예전에 선화 상인의 명성을 듣고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만불성성: 선화 상인이 1974년에 설립한 국제적인 불교 커뮤니티 및 사찰로 서양 불교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만불성성은 미국 내 가장 첫 번째로 설립된 선 수행 도량이며, 서양에서 가장 큰 불교 커뮤니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만불성성 법당 모습.

오랜 시간 장거리를 운전해서 도착한 만불성성이었지만, 아무도 없을 것같이 한적한 느낌에 별로 반겨주거나 어떻게 찾아왔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먼 거리를 달려갔는데, 그곳엔 낡고 오래된 건물들뿐이었고, 사찰 내 서점마저도 봉사자 부족으로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공작새뿐이었습니다.

한국의 아담하고 예술적인 법당과 달리 만불성성의 법당은 아주 넓었지만 좀 썰렁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방문한 날이 평일이라 더 그랬을 겁니다. 우리는 보통 동양 문화권의 화려하고 예술적인 사찰들에 익숙합니다. 높은 수준의 건축기술, 예술과 문화가 모두 집약돼 지어지는 곳이 바로 불교식 사찰입니다. 깊은 신심을 갖고 수천 년간 유지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사람들은 비용이 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만불성성 법당 모습.

그에 비하면 만불성성의 건물들은 꽤 못생긴 편입니다. 아무튼 만불성성은 미국 내 첫 위앙종 도량이며, 미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의 중심지라는 위대한 명성은 있지만 생긴 게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거기서 그나마 제일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일주문입니다. 이것이 만불성성의 대표적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화 상인은 일주문조차도 큰 예산을 들이진 않았다고 합니다.

만불성성 일주문. 출처 셔터스톡

만불성성은 지난 25년간 크고 훌륭한 법당을 지으려고 노력해왔다고 합니다. 3,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법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큰 예산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화 상인은 생전에 “멋진 법당이 지어지면, 여기서 수행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다”라며 “그러면 더는 누구도 여기(만불성성)에서 수행으로 과위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국 노산사 전경.

그런 만불성성보다도 훨씬 더 못생기고 볼품없는 곳이 노산사입니다. 사람들이 노산사에 오려다가 잘 못 찾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절처럼 생기지 않은 데다가 일반 거주용 집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곳이 바로 제가 스승인 영화 스님을 처음 만난 곳이고, 거기서 불교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노산사에 있을 때, 영화 스님이 저희에게 해주신 말이 기억납니다. “주위를 둘러봐라. 여기는 모든 게 다 시험이다. 이렇게 못생긴 절에 누가 오겠니? 우리가 나중에 커지고 유명해져도 난 노산사는 손대지 않을 거다. 전혀 바꾸지 않을 거야.” 사람들을 훈련하기 위해서 노산사의 못생기고 불편한 곳을 유지할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위산사 전경. 

제가 출가식을 치른 곳은 영화 스님의 두 번째 도량인 위산사입니다. 우리한테 노산사에 비하면 위산사는 거의 호텔 수준입니다. 노산사는 너무 작고 좁았기 때문에, 위산사가 생겼을 때 영화 스님의 제자들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위산사에 온 한국분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한다”라고 말했을 때,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위산사가 열악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여러 사찰을 방문해보니 왜 많은 한국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오래된 교회 건물을 개조한 위산사는 전체 큰 건물에 두 개 있는 샤워실을 모든 이들이 같이 나눠 씁니다. 역시 냉난방이 되지 않고, 부엌도 낡고 지저분합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 스님의 도량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불편하기만 하고, 갖춰진 것도 별로 없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습니다. 제게 그런 건 외부적인 요인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엔 내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법이 있고,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그런 곳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큰 신심과 복이 많을 수는 있지만, 마음을 해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으면 그런 것들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해탈을 가르쳐줄 수 있는 법이 없으면 우리는 늘 제자리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바로 다르마, 즉 법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멋지고 화려한 사찰이나 신도가 아닙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사찰 건물, 장엄하고 빛나는 불상은 아직 해탈하지 못한 중생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아직 신심과 복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마음이 여전히 상(모양)에 집착이 있기 때문에,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법당과 불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상에 집착하며, 이런 것들 없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산사 법당에서 법문을 듣는 사람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전수되어, 따르고 믿고 수행할 수 있는 다르마(법)입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법은 해탈을 얻고, 지혜를 열게 해줘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승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값진 것이 법이라고 느낍니다. 그것으로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수행법과 가르침들이 제게는 보물이고, 여러분에게 글로 전해드리는 이런 모든 것들도 전부 스승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르마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진언(탄트릭 또는 신주), 염불법, 참회법 등 다양한 다르마 즉 수행법을 쓰지만, 그 중심에는 핵심인 선(禪)이 있습니다. 선은 힘입니다. 그래서 선화 상인과 영화 스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선부터 가르치셨습니다. 선으로 힘을 얻어야만 염불이든 진언이든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선정의 힘이 있어야 법문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만 하려고 합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수행을 균형 있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장애와 업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능엄신주, 대비주, 약사주 등 다양한 신주 수행을 합니다. 선을 지도하다 보면 이런 신주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장애를 극복하고 방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수행하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토법이 있습니다. 스승님은 늘 제자들에게 강조하십니다. 정토법은 우리가 이생에서 득도할 수 없을 때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법에 무엇 하나도 필요 없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번 생에서 해탈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다음 생에 정토에 가서 아미타 부처님의 지도하에서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선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따릅니다. 여러분이 용감하게 이런 고난을 겪을 수 있다면, 그게 최상입니다. 하지만 현생에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면, 선화 상인과 같은 선지식을 찾으셔야 합니다. 선화 상인께서는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정토법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없으면,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나는 부처님을 믿습니다. 불교를 믿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행동으로 해야 합니다. 대승에 대한 신심은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대승입니다.

만불성성 사천왕 앞에서 현안 스님.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우리 사찰의 목적(Purpose of our temple)’ 법문(2016년 3월 13일)

 

사진. 현안 스님 제공

현안(賢安, XianAn) 스님
미국에서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후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그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청주 보산사를 거쳐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BBS불교방송 라디오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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