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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로 파악하는 불교의 핵심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 | 불광출판사 | 상하 2권 1셋트

하루 한 구절
대강백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로 파악하는 불교의 핵심

흔히 부처님의 일대 교법을 ‘팔만 사천 법문’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팔만 사천’이란 실제 가르침의 수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아주 많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전 한 말씀 한 말씀이 문자사리(文子舍利)요, 깨달음의 보고(寶庫)라는 건 알고 있어도, 그 많고 많은 가르침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하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꾸준히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모두 읽으려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뜻을 다 알려면 길고긴 시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요즈음은 무언가를 읽을 틈을 만들기도 쉽지 않아, 방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읽고 배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2006년 출간된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 100선 시리즈’(전 4권)는 독자들의 주목을 끌어 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전과 경전 해설서, 스님들의 어록 등 방대한 불교 문헌 가운데 ‘대강백’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핵심만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소 이해하기 어렵거나 난해한 구절은 스님의 명쾌한 해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 명구 365』(전 2권)는 절판되어 그동안 전자책 혹은 중고 책으로 접해 볼 수밖에 없었던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 100선 시리즈’의 글 가운데 365가지를 뽑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나하나 날짜를 붙여 하루 하나씩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것이다. 수록된 구절들은 『금강경』이나 『화엄경』 같은 유명한 경전부터, 『금강경오가해』 같은 경전 해설서, 『임제록』이나 『육조단경』 같은 선어록 등 다양한 문헌에서 가려 뽑았다. 여기에 무비 스님이 출처가 되는 문헌에 대한 설명과 구절에 담긴 뜻, 유래 등의 해설을 덧붙여 혹 어렵게 느껴지는 구절이라도 그 뜻을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검은 먹으로 표현한 그림을 수록하였던 이전의 시리즈와는 달리,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한 그림 47여 컷을 컬러로 실어 잠시나마 눈과 마음을 쉬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책속 명구를 한 구절씩 읽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을 돌아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 어느새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듯 읽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읽으며 느끼는 365구절의 명구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불가에 전해 내려오는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의 말씀은 사부대중은 물론 지금 여기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나 다름없다. 그래서 하루에 명구 하나씩 읽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비춰보고,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강점은 무비 스님이 경전과 선어록을 공부하며 명구라고 여겨지는 것은 옮겨 적어 외우며 오래도록 곱씹었던 내용을 드러낸 결과물이기에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무비 스님이 명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출가하게 된 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자경문」의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이웃 사찰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또래의 동자 스님이 이 구절을 읊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감동하여 자신도 이런 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출가할 마음을 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스님은 출가 후 경전과 해설서, 선어록을 공부하다가 명구라고 여겨지는 것은 옮겨 적어 외우고 버리고, 옮겨 적어 외우고 버리고 하는 일을 수십 년간 해왔다. 그리고 수십 년간 계속해 온 일의 결과물을 또 다시 선별하여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된 명구들이다.

이 가운데에는 불법(佛法)을 담고 있는 구절들도 많지만, 불교를 알든 모르든, 가슴을 찡하게 울릴 만한 구절들도 많이 있다. 효심이 지극했던 진묵 일옥 스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쓴 제문(하권 190~192쪽), 그리고 어느 노스님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출가자의 처지를 돌아보며 병든 스님을 돌보라는 부탁을 담아 영암산 석벽에 새긴 글(하권 144~146쪽) 등이 그 예이다. 이런 구절들은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읽고 느끼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물론 똑같은 구절을 읽어도 깊게 감동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덤덤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365구절의 명구 가운데 마음 깊이 다가오는 구절이 하나도 없을까. 무비 스님이 어린 시절 「자경문」 한 구절에 감동 받아 출가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불교 공부를 시작하는 계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눈을 뜨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태어남도 그냥 그런 것이고 죽음도 그냥 그런 것이다.
게송이 있든 없든 이 무슨 독촉인가.
- 서장, 대혜 종고

대혜 스님이 임종할 때 제자들이 임종게를 청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지나치게 졸라 대어서 얻어 낸 임종게 같다. 스승은 죽어 가는데 임종게를 써 내라고 치근대는 제자들처럼 철없는 사람들이 어디나 있게 마련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지만 그래서 억지로 받아 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누워 있는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앉히는 수도 있단다. 좌탈하였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소위 요즘 말하는 열반송이다. 열반송으로는 대단히 빼어난 것이라고 평한다. 무슨 특별한 뜻이 없다. 태어나거나 죽거나 생사 문제를 이미 초탈하였기 때문에 그 경지를 잘 표현했다. 특별히 경지라고 할 것도 없지만 생과 사도 그냥 그런 것인데, 생사 중에 먼지보다도 못한 게송이 대수겠는가 하는 뜻이다. 특별한 말씀을 기대한 제자들에게는 좀 맥이 풀리는 말이지만 대혜 스님으로서는 당연한 임종게다. 생사를 이렇게 알아야 하고 임종게 또한 이렇게 알아야 한다.
(상권 54~56쪽)
 

큰 도는 항상 앞에 있지만 비록 눈앞에 있다 해도 보긴 어렵다.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달으려면 소리와 형상과 언어를 없애지 말라.
- 대승찬, 보공

이 글은 「대승찬」이라는 게송 중의 첫 수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금릉의 보공 화상이 황제에게 지어 바친 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고구려에까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명성이 높은 고승이었다. 짧은 시구 속에 불교의 진수를 잘 표현하였다. 큰 도란 무엇인가? 눈앞에 있는 두두물물과 화화초초가 모두 도다. 저 하늘 저 구름, 산도 물도 다 도다. 책들도 컴퓨터도 역시 도다. 그래서 세존은 꽃을 들어 보였고, 구지 화상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큰 도는 그렇게 간단하고 쉽다. 유교에서도 도는 잠시라도 사람과 떠나 있을 수 없다. “만약 잠깐 동안만이라도 떠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도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비록 눈앞에 있어도 보기 어렵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모두 도라고 믿으면 된다. 일상사가 도다. 삶이 도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길을 가고 하는 그것 자체가 도다.

만약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달으려면 소리와 형상과 언어를 없애지 말라고 하였다.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귀에 들리는 일체 소리를 제외하고 따로 무슨 도가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을 떠나서 무슨 도가 있겠는가. 소리가 있어서 듣고, 모습이 있어서 보는 일들이 삶이며 도다. 그리고 언어로써 그와 같은 사실을 설명한다.
(상권 156~157쪽)


빈틈으로 비춰 오는 밝은 햇빛에는 가는 먼지가 요요히 일고,
해맑은 연못 물엔 그림자가 소소히 밝다.
- 선가귀감, 청허 휴정

화두를 들거나 기도를 할 때,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망상과 잡념이 들어오는 것을 안다. 그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맑아졌다는 의미다. 평소에 일을 처리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할 때는 온통 망상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마저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그와 같은 마음의 변화를 잘 나타낸 글이다. 망상을 의식하기까지는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일어난 망상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대개의 공부라는 것이 망상과의 싸움이며 혼침과의 싸움이다. 마음이 더욱 맑아지면 또 다른 차원의 미세망상이 일어남을 알게 된다. 세밀하면서 더욱 맑아지고, 맑아지면서 더욱 세밀해진다. 선은 하나의 거울이다. 사람의 마음 상태와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선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 맑고 밝다. 가까이 해석하면 언덕에 올라 굽이쳐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일이며, 병상에 누워 잦아드는 시간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상권 204~205쪽)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고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간다.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지은 업만 따라갈 뿐이다.
- 자경문, 야운

(…) 오나가나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고, 가져가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명예도 처자권속도 가져가지 못한다. 오직 자신이 지은 업만 따라다닐 뿐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업을 잘 닦아야 한다. 사람들이 사는 데 천차만별한 것은 스스로 지은 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불만스러우면 자신이 지은 업을 탓할 일이지 결코 남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부처님을 향한 신심으로 기도를 하고 절을 드리며 참선과 간경 등의 여러 가지 난행과 고행을 하는 건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 외의 다른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실은 그런 일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금생에도, 내생에도 지금과 같이 부처님께 신심을 내어, 기도하고 절하며 참선과 간경으로 지혜를 갈고 닦아 삼독의 소멸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뿐이다. 불교인의 가치관은 이와 같아야 생각이 바르다고 할 수 있다.
(하권 34~35쪽)
 

꽃은 지는데 스님은 절문을 닫아 건 지 오래고
봄을 찾아온 나그네는 돌아갈 줄 모른다.
바람이 불어 둥지에 앉은 학의 그림자를 흔들고
구름은 흘러들어 좌선하는 스님의 옷깃을 적신다.
- 청허 휴정

청허 휴정 스님이 옛 절을 지나면서 읊은 시다. 아마 혼자 만행을 하다가 오래되어 돌보는 사람도 없는, 폐사에 가까운 절에 머물면서 지은 것 같다. 조선 중엽 배불 정책으로 스님들이 떠난 퇴락한 절이 많았으리라. 청허 스님은 세상 인연 다 끊고 오로지 외롭게 수행에만 몰두하여, 세상의 정도, 인간적인 일체 상념도 다 떨어져 나간 바람같이 물같이 자연과 하나가 된 심경에 이른 듯하다.

여기에 절 문을 닫아 건 사람도 청허 스님 자신이고, 돌아갈 줄 모르는 나그네도 청허 스님 자신이며, 좌선하는 중도 청허 스님 자신이다. 선인(禪人)으로서 선경에 이르러 선심을 그린 선천선지의 모습이다.

늦은 봄인가 보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은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섰다가 이곳까지 왔다. 그러고는 그냥 그곳에 눌러앉아 돌아갈 생각을 잊고 있다. 갈 곳도 없고, 갈 필요도 없다. 마음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작은 바람결에 둥지 위에 앉은 학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선심이 얼마나 적정한 곳에 이르렀으면 이럴 수 있는가. 구름이 스쳐 간 중의 누더기에 습기가 살짝 배어 있는 것을 느낀다. 보살은 삼매에 들었을 때 설산에 앉아 코끼리 떼가 항하를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하권 111~112쪽)


잠깐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여,
그 즐거움이 괴로움의 원인인 줄 알지 못하도다.
- 위산경책, 위산 영우

(…) 위산 스님은 당시에 수행자들이 점점 게을러지고 위의를 갖추지 않으며 승려의 본분을 지키지 않으므로, 드디어 이 경책문을 지어서 그들을 경책하여 수행의 정도로 돌아오게 하였다. 글은 간단하나 그 뜻은 간절하다. 그래서 초학자의 필독서로 꼽힌다.

잠깐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단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어쩌면 세상 사람들 모두 항용 범하는 일일 것이다. 어릴 때 놀기에 빠져서 숙제를 하지 않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놀러 다니다가 친구들과 한때의 재미로 못된 짓을 한 것이 습관이 되어 형무소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생을 기박(碁博)과 주색의 재미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한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평생을 망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출가하여 남과 다르게 수행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게으르고 속된 일에 맛들여서, 젊을 때는 즐거웠으나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고 승속간에 천대를 받고 사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러한 모든 경우가 다 위산 스님의 경책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수행자들이 다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출가하여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강원에서 이 글을 뼈에 사무치도록 읽고 또 읽게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하권 209~210쪽)

 

여천 무비(如天 無比)스님은?

1958년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였으며 해인사․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안거하였다.

월정사 탄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8년 5월에는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춘 승랍 40년 이상의 스님에게 품서 되는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현재 부산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스님 150여 명, 재가신도 300여 명에게 『화엄경』을 강의하고 있으며, 인터넷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yumhwasil)을 통해서 불자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 『신 금강경 강의』, 『법화경 강의』(전 2권), 『대승찬 강설』, 『임제록 강설』, 『사람이 부처님이다』, 『일곱 번의 작별인사』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80권 화엄경 해설서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전 81권)을 완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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