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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상을 어떻게 만났나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

옛날부터 우리는 삶을 고통의 바다에 비유하며 ‘인생고해(人生苦海)’라는 말을 즐겨 써왔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으로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영광스런 날은 잠깐이었고 대부분의 날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누구나 삶의 여정 속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일단 피하고 보자고 도망가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런 회피적인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점점 더 키우고 만다.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이런 고통을 만들게 된 원인이 무엇이며, 고통 없는 행복한 세상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76년간의 삶의 궤적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이의 극복 과정이었다. 힘든 여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삶의 전환점을 마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 특히 30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의 40여 년 동안 일어난 특별한 몇 가지 일들을 회고해 봄으로써 이 책의 서문에 대신할까 한다.

지금부터 40년 전 내 나이 36세 때, 나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의욕 저조 때문에 정신 분석 치료를 받았다. 당시 나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였고, 동시에 서울대 의대 약리학 교실과 가톨릭 의대 생리학 교실의 외
래 교수로서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다. 뇌과학과 정신약리학이라는 첨단과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내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외양을 비교적 잘 갖추고, 더구나 심리학을 전공으로 한다는 교수가 무슨 괴로움이 있어 정신분석 치료를 더 받는다는 말인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나의 이 모든 정신적 고통이 나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약물도 의사도 아니며 나자신이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 헤매었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이 바로 하버드 의대 벤슨 박사가 쓴 『Relaxation Response(이완반응)』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만트라 명상법이 목마른 나에게 감로수가 되었으며, 이것이 나와 명상과 의 첫 인연이었다.

당시 나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해준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정신과 의사였다. 선생님은 ‘도(道) 정신치료’라는 동양 정신의 도(道)에 바탕을 둔 독특한 정신치료법을 전 세계 정신의학자와 심리치료가에게
전파한 분이다. 어느 날엔가는 “자네는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명상이나 참선 같은 정신수련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보면 어떻겠나.”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당시 뇌의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주로 뇌파 기록을 통해 알아보아야 했다. 그러나 뇌파를 찍는 장비가 워낙 고가이고 뇌파 촬영에 따른 각종 소모품 비용도 만만치 않아, 뇌파를 이용해 연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이듬해인 1978년 겨울,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영남대 총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총장님은 “영남대에 심리학과가 다음해 3월에 만들어지니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는가” 하고 제안하셨다. 교수직을 제의 받고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참선이나 명상같은 정신 수련법을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밝힐 수 있도록 연구 장비를 제공해 준다면 뜻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총장님은 의과대학과 부속 병원도 동시에 만들 계획이니 그 문제는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1979년 3월 ‘명상의 정신생리학적 연구’라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해 10월 26일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사태가 발생하였고, 이어 12.12사태,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발생으로 나의 꿈은 깨어졌다.

나는 이 암울한 시기에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격리성장과 행동장애’라는 연구였다. 1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수십 편의 실험 논문을 쏟아내었고, 1985년 내 자신의 실험 연구 논문만으로 『격리성장과 행동장애』라는 단행본도 출간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분노조절장애, 성적욕망조절장애, 주의집중장애 등이 어린 시절부터 동료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보호받는 집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를 바로 격리성장 증후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은둔형 외톨이의 행동 특징과 뇌 장애를 세계 최초로 체계적 실험을 통해 규명한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격리성장에 따른 행동장애 연구 업적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나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인명사전인 ‘마르퀴스 후즈 후’ 5개 분야(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Who’s Who in Medcine and Healthcare,Who’s Who in Science and Engineering, Who’s Who in Leaders, Who’s WhoAsia)에 등재되었다. 또한 국제인명센터(IBC)에서 100대 교육자에 선정되고,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리고 미국인명연구소(ABI)에서 ‘2009년 올해의 인물(2009 Man of Year)’로 선정해주어,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되는 엄청난 영광도 얻었다.

내가 동양 정신문화의 진수인 명상과 관련해 과학적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6년 미국 뉴욕의 주립 뇌장애발달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다. 이때 나는 보스턴에서 미국에 선불교를 전파하고 계신 숭산(崇山) 스님을 뵌 적이 있다. 스님은 나에게 미국에 대한 인상을 물으셨는데, 나는 거침없이 “참담하고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스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고 되물으셨다. 이에 “오늘날 이곳 사람들이 지나친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남에게 관심도 없고 소통도 없을 뿐 아니라, 또 이들의 선조가 수많은 사람들(인디언)을 학살했고, 노예(흑인들)로 혹사했고, 자연을 훼손한 인과응보에 의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리고 “물질 위주의 서양 문명은 정신 위주의 동양 문명을 적절히 섭취하여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본적 문명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숭산 스님은 미소로써 화답했고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 서양 사람들이 명상에 열광하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 수련이 바로 심신치료가 된 시대”라고 미국 심리학회의 공식기관지인 「American Psychologist(미국 심리학자)」 2015년 10월호에서 언급하고 있다. 사실 마음챙김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시대가 되었다. 2014년 2월 3일자 「타임(Time)」지는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마음챙김 혁신(Mindful Revolution)”이라는 제목으로 표지기사를 실었다.오늘날 병원 외래 환자의 80~90%가 스트레스 관련 환자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물학적으로는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990년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의료원의 존 카밧진에 의해 도입된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MBSR)> 프로그램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MBSR은 임상의료분야, 학교 장면, 산업체 장면, 군사작전 장면 등으로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이 MBSR을 만든 존 카밧진은 앞서 언급한 숭산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배운 제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3년 8월 중순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건강 심리학회에서였다. 이 학회에서 카밧진을 기조 연
설자로 초청하였고, 그가 1990년에 쓴 그의 첫 저서 『Full Catastrophe Living(총체적 위기의 삶)』을 그곳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연설을 듣고 저서의 서문을 읽는 동안, “아! 바로 이거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어 했고 꼭 해야만 할 일들이 바로 여기에 다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반드시 이 책을 번역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사명감이 일었다. 또한 이 MBSR 프로그램을 의료 장면에 도입해 환자치료에 활용해야겠다는 강렬한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렇게 다짐한 지 5년 후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라는 제목으로 김교헌 교수와 공동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또한 카밧진의 MBSR을 바탕으로 호흡명상과 자비명상을 가미하여 한국형 MBSR인 <K-MBSR>을 만들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가톨릭 의대 통합의학 교실의 외래교수로서, K-MBSR을 환자치료에 직접 활용하였다. 2012년에는 대구시교육청과 MOU를 맺고, 교사들을 상대로 하는 5주짜리 단축형 K-MBSR을 1,400여 명의 교사에게 2년 동안에 걸쳐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을 교육받은 교사들의 만족도가 무려 98점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삼성 그룹의 명상자문단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대기업에 명상이 도입되는 데 일조를 하게 되었고, 몇몇 대기업에서 명상의 필요성에 관해 특별강의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모 대기업에서 우
선 인사담당자와 인력개발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자기 인식, 자기 조절, 회복탄력성, 공감과 자애심 등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1997년은 나에게 가장 고통스런 한 해였다. 안식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명상을 수련하기 위해 선원에 들어가 1년 간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약속한 선원에 사정이 생겨 계획대로 되지 못해 대신 미국 애리조나 대학으로 갔다. 그곳 심리학과의 게리 슈워츠 교수의 초청을 받아 명상의 의료 적용에 관해 연구해 볼 계획이었다.

내가 애리조나대학에 갔을 때 처음 3개월 동안은 하루 6시간의 명상 수행, 6시간의 연구 작업, 6시간의 수면, 6시간의 일상 활동으로 스케줄을 잡아 엄격하게 실행에 옮겼다. 집은 교직원 기숙사를 빌렸고, 자동차도 없이 지냈다. 3개월의 수행이 끝나고, 3개월 동안 미국 각지를 여행하려는 만행의 시기에 아내, 아들, 딸이 찾아왔다. 이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 아내와 딸은 유명을 달리 했고 나는 두 다리와 발등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으며, 아들도 다리의 인대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4개월의 재활 도중 나는 그 동안 번역하고 익힌 카밧진의 마음챙김 명상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삶의 지혜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알아차림하고, 알아차림한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현재’라고 하는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아차림하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머물면서 온갖 환상을 떠올린다. 이제 이런 환상에서 깨어나 지금 존재하는 이곳에서 또렷하게 알아차림함으로써 나라는 존재의 참된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에 있든 존재의 주인공이 되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진리라는 뜻이다. 이 책에는 독자들이 마음챙김 명상을 비롯하여 몇 가지 명상을 직접 익힐 수 있도록 실습에 필요한 안내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오랜 시간 명상을 지도해오면서 실제로 사용해왔던 명상 안내문의 내용이다. 독자들은 이 안내문을 읽고 직접 따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
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고뇌들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장현갑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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