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책방일지 – 014. 힘을 내요, 작은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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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책방일지 – 014. 힘을 내요, 작은 책방~!
  • 이보람
  • 승인 2017.04.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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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책도매상 송인의 부도로 출판계와 서점의 시름이 크다는 뉴스를 보았다.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헬로인디북스는 출판도매업체의 부도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는 출판물이 아닌, 개인이 직접 들고 나르는 독립출판물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기의 유통구조에서 빗겨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출판물 등록 없이 만드는 독립출판물은 제작자가 책을 직접 서점에 가져다 주거나 택배로 보내준다.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는 당연히 유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독립출판물은 책이 나온다고 일괄적으로 입고되는 일도 없고, 책을 추가로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해도 바로 받을 수 없다. 때론 재입고 요청에 아예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자면, 책 몇 권을 보내기 위해 판매 정산금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택배비 혹은 교통비를 부담하며 책을 입고시키는 꼴이다. 4,000원짜리 택배를 이용해 1,000원짜리 엽서 5장을 보내준 분도 있다. 간혹 책방지기는 다른 책방에 입고된 독립출판물이 내 책방에는 입고되지 않아서 시름에 빠지기도 한다. 이 바닥의 유통이란 연애의 밀당 같은 느낌이 있다. 개인 대 개인이 일하는 구조다 보니 감정 소모에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의 이런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구조를 굳이 개선할 생각은 없다. 제작자에게 직접 책을 받으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도 의미 있고, 택배박스 속에서 책방지기를 위한 간식이나 혹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발견하는 기쁨도 꽤 크기 때문이다. 편지나 선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찢어진 박스는 찢어진 대로, 박스가 분홍색이면 분홍색인 대로 다 달라서 더 재미가 있다.

개선을 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독립출판물은 애초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관리시스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규격, 비정형 책들에, 장르 구분도 어렵고, 볼륨도 판형도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가격까지도. 최근에 입고된 책은 가격이 10,001원이었다. 1만원 아니고 1만 1원. 이유를 묻자 1원짜리 동전에 무슨 그림이 새겨져 있는지 아느냐고 되물으며 “사람들에게 1원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다는 거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괴짜 같은 발상으로 가격을 매기는 일이 가능한 곳이 독립출판물 세상이다. 또 어떤 책은 손님이 가격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책의 가격은 네 가지예요. 100원, 1,000원, 1만원, 10만원 중 원하시는 가격으로 계산하시면 돼요”라고 설명하면 손님은 당황하면서도 가격을 고르기 위해 고민에 빠진다.

나는 손님과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재미있다. 편의점이 아닌 책방에서 일하는 게 그래서 좋다. 편의점에서는 “이 삼각김밥이 왜 900원인지 아세요?”라고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간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 책이 왜 10,001원인지 아세요?”라고 질문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떤 제작자는 구매손님에게 책을 선물처럼 주고 싶어서 책에 리본 달고 스티커를 붙여 예쁘게 포장하고, 어떤 제작자는 환경을 생각해 비닐봉투 포장을 하지 않는다. 정기간행물이지만 여름호가 가을에 나오기도 하는 비정기 책인데도 ‘월간’이란 용어가 붙어 있는 매거진도 있다. 이유는 ‘월간’이 있어 보여서. 제작자의 개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묻어 있는 재미있는 세계. 그래서 난 이 불편한 세계를 시스템에 맞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독립출판물 책방이건, 일반 책방이건 어찌되었든 작은 책방들은 모두 내외부 문제와 싸우느라 매일 골치가 아프다. 그래도 다들 ‘될 대로 되라지’ 손 놓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에 제주도와 서울 책방 투어를 다녀온 친구가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사진 속 작은 책방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책을 추천하는 멘트들을 메모지에 적어 책장에 붙여두었다. 나만 손님들과의 대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책방들이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쓰고 더 오래 책방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헬로인디북스는 봄이 되면 책구루마를 끌고 연트럴파크에 가서 여러 사람들과 돗자리 위에서 책을 읽어볼까 한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글·사진Ⅰ이보람(‘헬로 인디북스’ 주인장)

* 출처 : http://street-h.com/magazine/9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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