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겉다르고 속다른 부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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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겉다르고 속다른 부부관계
  • 관리자
  • 승인 2007.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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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결혼을 통하여 부부가 되며 남편과 아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요즈음 신세대 젊은 부부들은 자신의 남편을 ‘우리 신랑’이라고 지칭한다든가, 상대를 ‘자기’ 또는 ‘··· 씨’로 부르는데 처음 들을 때는 귀가 스멀거리고 도무지 불편하고 해괴한 느낌마저 들던 기성세대 어른들도 이제는 귀에 익어 젊은 사람들의 유행쯤으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

젊은 부부를 둘러싼 이같은 신세대 풍속도를 보면서 결혼의 의미라든가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곤 한다. 부부간의 호칭은 어느 시대에나 그나름대로 있어 왔고 어떤 특정시대에 쓰여지는 호칭에서 우리는 언뜻 남녀 부부관계의 위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시집가서 층층시하에서 며느리의 법도를 지키며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주는 것이 인생 최대의 의무이고 목적이었다. 이들은 엄격한 남존여비의 상하계위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여필종부하고 부창부수할 뿐만 아니라 부부유별이라는 부부관을 철저히 익혀 실천해야만 덕있는 지어미의 월계관을 쓸 수 있었다. 이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 할머니들이 배우자를 문자 그대로 ‘하늘 같은 지아비’로 모시고 살았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안채에서 봉제사 접빈객의 대임을 수행하느라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자신의 남편은 ‘사랑채 어른’으로 공경하고 극진히 떠받들고 살았던 것 같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당신 남편을 항상 ‘그 어른’으로 호칭하셨는데 일상적인 모든 태도가 ‘그 어른’을 모시고 사는 것이 몸에 배인 분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상하기도 하고 얼떨떨했지만 시어머니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른’ 남편은 그 누구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는 구시대 부부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빨리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이렇게 옛날 할머니들이 인식하고 있는 부부관계는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는 어른으로서의 남편이었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겉으로 그런 척이라도 하며 살았던 분들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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