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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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장 풍경
  • 백승권
  • 승인 2021.1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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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쾌활한 강의장, 답답한 강의장

십오 분 전 강의장에 도착한다. 몇몇 사람이 앉아 있지만 아직 빈 자리가 더 많다. 휘 둘러보며 강의장 분위기를 느껴본다. 아직 수강생이 많지 않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강의장 조명과 빈 의자만으로도 전해오는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은 대체로 두 가지. 쾌활함 아니면 답답함.

쾌활한 느낌이 드는 강의장은 일단 조명이 밝고 의자는 유채색 계열이다. 강의장 뒤에 사탕, 초콜릿, 스낵, 파이 등 군것질거리와 탄산음료, 과일주스, 차, 커피 등 마실거리가 다양하고 풍성하다. 강사의 테이블 위에도 생수와 함께 군것질거리, 마실거리가 담긴 작은 바구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고 물샐 틈 없는 준비를 위해 담당자가 분주하게 강의장을 누비고 다닌다.

답답한 느낌이 드는 강의장은 해 질 녘처럼 조명이 어둡고 의자는 무채색 계열이다. 강의장 뒤엔 군것질거리, 마실거리는 없고 교재만 놓여 있다. 물을 한 잔 마시려면 강의장 밖 복도를 한참 걸어가야 한다. 강사가 물을 달라고 말하기 전까지 강사의 테이블엔 마이크와 교재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강의용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도 꺼져 있어 강사가 직접 켜야 한다. 담당자는 인사만 빼꼼 나눈 뒤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다.

강의 시간이 임박해 수강생이 얼추 의자를 채우면 강의장 분위기는 새로운 차원을 맞는다. 쾌활한 느낌이 더 고조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답답한 느낌으로 바뀌기도 한다. 답답한 느낌의 강의장도 마찬가지다.

 

수강생을 보면 회사 문화가 보인다

수강생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잡담을 많이 하면 강의장엔 활력이 넘친다. 강의 시작을 알리고 정숙이 유지될 때에도 수강생들의 눈빛엔 어떤 기대와 호기심이 넘쳐흐른다. 강사의 질문에 대한 반응도 활발하다. 한마디로 리액션이 좋다. 예문 낭독이나 실습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수강생들을 만나면 시간이 금방 간다. 에너지를 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에너지를 받아 온다.

분명 같은 회사 사람들인데 데면데면하다.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은 곳을 골라 혼자 자리 잡은 뒤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강의가 시작됐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웹서핑을 한다. 심지어 버젓이 노트북을 펴놓고 회사 업무를 보기도 한다. 리액션이 없다 보니 강사 혼자 묻고 답해야 한다. 극히 일부만 실습에 참여한다. 한참을 떠들었는데도 시침, 분침이 ‘문워크(moonwalk)’를 하는지 변화가 거의 없다. 강의가 끝나면 땅속으로 꺼질 것처럼 피로가 몰려온다.

강의장과 수강생을 보면 그 회사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쾌활한 분위기는 상하좌우로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대표는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임원과 간부, 일선 직원들 사이에 의견 표출과 수렴이 자유롭고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답답한 분위기는 위아래와 앞뒤로 꽉 막힌 불통의 방증이다. 대표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상관과 부하 직원 사이엔 위에서 시키면 아래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명하달의 구태가 회사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업무가 너무 힘들어 직원들의 얼굴과 행동이 경직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업무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가 고립과 무반응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강의하면서 답답한 강의장 분위기의 이면에 깔려 있는 고립과 무반응의 문화를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내 문서 작성의 규칙을 만들자 

필자가 하는 보고서 작성 강의는 결국 문서를 매개로 하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각자 다른 방식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상관은 결과를 먼저 알고 싶은데 부하 직원은 배경 설명부터 한다. 상관은 결정하고 판단할 내용부터 찾는데 부하 직원은 자신이 일한 과정부터 설명한다. 상관이 모호하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부하 직원은 ‘관심법’을 배워야 한다. 상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은 것을 부하 직원에게 던지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이럴 때 문서 매뉴얼을 만들어 어떤 내용을 선택해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를 서로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입장이 아니라 공통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의 문서 작성의 규칙과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고민을 처음 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청와대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 공무원들만 해도 출신 부처가 다르고 민간에서 온 별정직은 출신 회사, 전문 분야가 다르다. 각자 일하던 곳에서 익힌 문서 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쓰는 사람은 큰 문제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읽는 대통령. 백인백색의 종류와 형식. 보고서 내용을 전개하는 논리 패턴도 다르고 서식, 서체, 글자 크기도 다르다. 보고서를 볼 때마다 새로운 형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에 요청한다. 문서의 종류와 작성방법, 서식을 모두 통일하자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청와대 보고서 작성 매뉴얼>. 필자의 강의 콘텐츠는 여기로부터 출발해 민간의 다양한 보고서 사례들을 수렴하고 응용해 발전해 왔다. 3년 전 출간한 『보고서의 법칙』이 그 중간결산의 산물이다.

한 해 1,000시간 가깝게 강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보고서 작성의 수준과 문화는 무질서를 갓 벗어난 정도다. 그만큼 많은 직장인이 소통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혼자 역량으로 역부족을 느낀다.   

 

수강생 눈빛을 공손하게 만드는 법

강사 생활 몇 달이 지나자 수강생들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수강생들은 먼저 자신들 앞에 무언가를 가르치겠다고 서 있는 사람의 자격부터 따져 본다. 강사의 프로필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더 적극적인 수강생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강사 이름을 넣어 검색해 본다. 강사와 관련한 여러 정보가 뉴스, 블로그 등의 아티클 제목으로 뜬다. 강사의 이력과 활동과 발언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사의 역량과 자격을 가늠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정보다. 

강의 내용을 검증하는 수강생도 있다. 강사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것인지, 어디서 베껴온 것인지 감별하는 것이다. 말을 통해 강의가 이뤄지지만 그 ‘진본성(眞本性)’은 설득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강사가 직접 겪었거나 직접 고안한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는 실제 주인공과 대역배우만큼 그 차이가 크다. 

현명한 강사는 수강생들이 들끓는 의심을 빨리 재우고 공손한 배움의 눈빛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킬러 콘텐츠를 먼저 던진다. 필자는 전업 강사 초기, 통상 강의 말미에 갖게 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강의 시작 부분에 배치한 적이 있었다. 

준비된 콘텐츠에 따라 진행되는 본 강의에서는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 어렵다. 예측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게 하고 거기에 순발력 있게 응답하면 ‘꾸미지 않은 액면’이 드러나게 된다. 대통령이 사전에 기자단과 질문을 조율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싱싱하고 새로운 질문들이 많이 쏟아진다. 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순간적으로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고 그것들을 상상력과 논리로 팽팽하게 묶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필자는 새로운 강의 콘텐츠를 발견하는 망외(望外)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그나저나 코로나19로 이렇게 강의장에서 수강생을 만나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면 강의를 가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고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아 강의장 분위기는 늘 답답하다. 곧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체제로 접어든다는 소식이 있는데, 강의장에도 다시 활기가 돌아오면 좋겠다.  

 

백승권
글쓰기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로 업무용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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