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불교 생활 - 헛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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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불교 생활 - 헛애
  • 원제 스님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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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엔터테인먼트를 주축으로 일본에서 진행 중인 ‘니지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인데, 오디션을 통해서 선발된 친구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박진영 PD로부터 춤과 노래, 스타성, 인성을 평가받습니다. 그 중 힐만이라는 친구가 JYP 소속 가수 ITZY(있지)의 ‘달라달라’ 춤을 추고는 박진영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박진영이 힐만에게 본선에 들어오기까지 두 달 동안 연습은 안 하고 놀다 온 사람 같다며 질책을 한 것입니다. 어린 소녀인 힐만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스스로 춤을 잘 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울해진 마음에 그간 제대로 연습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주눅이 든 친구에게 마음을 편히 가지라든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식의 위로하는 말을 건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진영은 달랐습니다. 위로는커녕 삶의 엄정한 진실을 말해줍니다.
“자신감은 어마어마한 연습에서 나와요.”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의 속성도 있겠지만, 위로가 아닌 뼈아픈 직언이 때론 무척이나 소중하기도 합니다. 동정 어린 위로뿐 아니라 사려 깊은 채찍질도 알고 보면 자비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힐만은 물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였지만, 그 재능을 살리는 것은 본인의 노력과 연습입니다. 박진영은 연습하게끔 자극과 조언을 주는 사람이지, 연습마저 시켜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께서 비유하시길 당신은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약을 일러주신다고 하신 것이지, 그 약을 먹고 안 먹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좋은 선지식이란 이처럼 상대방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자발적으로 연습을 하도록 자극과 조언을 주는 사람입니다. 선지식이 약을 만들어서 입안에 떠먹여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만 선지식의 가풍이나 제자의 상태에 따라서 자극과 조언의 정도나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뼈아픈 사실을 곧장 지적하는 수준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 아예 자존심을 뭉개버리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본인의 재능을 살려내고 완성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연습이라는 기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는다 해도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깨달음의 빛은 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지만 진전이 있는 것 같지 않아 고민 상담을 해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그간 어떤 수행을 어떻게 해오셨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공부가 안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개 엇비슷합니다. 아직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부에 있어서 방향성이라는 게 물론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간절한 노력입니다. 비록 방향이 약간 다르다 하더라도 간절한 노력은 어떠한 공부든 결국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간절한 노력에 대한 저의 기준이 꽤 높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공부에 정체를 느꼈던 분들의 노력은 제가 보기엔 부족해 보였습니다. 물론 모두가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합니다. 하지만 과연 ‘나름대로’가 충분할까요. 생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이 수행이 과연 ‘나름대로’ 수준으로 해나갈 수 있는 걸까요. 깨달음이라는 성취를 이룬 그 많은 스승이 과연 ‘나름대로’ 해서 그러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나름대로’의 수행은 ‘나름대로’의 결과를 끌어낼 뿐입니다. 공부에 진전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수행은 공부인들이 하지만, 노력은 그 모두가 합니다.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한 그 소녀들도, 그 소녀들을 트레이닝시키기 위한 제작자도, 깨달음을 얻으려는 공부인도 모두 노력합니다. 비록 방향이나 역할은 다를지언정 모두 노력하는 겁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열망으로 십대의 소녀들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노력해야 하는데, 생사로부터의 대자유를 갈구하는 수행자가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해서 되는 걸까요. 저는 박진영이 툭툭 내뱉는 삶의 진실에 더욱 많은 공감을 합니다. 그가 한 말처럼 자신감은 어마어마한 연습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수행이라고 다를까요. 자유는 어마어마한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구분해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노력이 수행의 과정이기는 하되, 노력 자체가 진정한 수행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육조단경』에서 혜능 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수지수(無修之修)입니다. 무수지수란 ‘수행하는 바가 없는 수행’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수행하지 않는다거나 수행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수행을 한다거나 혹 수행하지 않는다는 식의 차별상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을 특정의 행위로 정의한다거나 혹 그런 행위의 유무 여부로 나누는 그 모든 상(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모든 분별의 상을 떠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수행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본연의 의미로서 무수지수입니다. 그 모든 노력이 작위의 힘을 덜고 자연스러움으로 펼쳐질 때, 그제서 무수지수입니다. 

무수지수는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박진영식으로 말하자면 이 자연스러움은 어마어마한 애씀으로 익어집니다. 온갖 분별상이라는 것도 수행이라는 노력 과정을 통해서 떨어지게 되어있지, 아무것도 않는다거나, 생각의 알음알이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비록 어록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선문의 수많은 조사도 어마어마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치셨습니다. 혜능 스님으로부터 ‘한 물건’이라는 말에 꽉 막혀서 앞으로 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남악 스님의 그 무수한 애씀도 기록에선 그저 ‘8년’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압축되어 나타납니다. 노력이란 당연하기에 길게 설명하지 않는 선의 가풍입니다. 그토록 공부의 근기가 좋다던 남악 스님도 8년 동안 무던히 애쓰셨습니다. 한데 고작 1, 2년 ‘나름대로’ 애쓴 걸 가지고 공부가 잘 안 된다며 푸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요.

저는 지금껏 종종 수행이라는 것이 인위적인 조작이라 말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이란 분별망상과 실체화라는 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조작입니다. 수행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필수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이 수행에는 어쩔 수 없이 애씀이 필요합니다. 수행이라는 연습이 삶이라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를 쓰고 애를 쓰다 보면 나중에는 애를 쓰지도 않고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질 때가 오기도 할 것입니다. 이때에는 더 연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문에서는 이 수행 과정에서의 애씀을 두고 ‘헛애’라 부르기도 합니다. 과정상 필요한 애씀이기는 하되, 무위(無爲)라는 자연스러움의 본분에서 보면 헛된 애씀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이 헛된 애씀을 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애씀을 멈춤이 수행의 궁극적인 뜻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수행으로서 무수지수입니다. 그렇기에 헛애는 필요 없다는 의미에서 헛애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필요 없음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의 헛애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입니다. 그렇게 무수한 시간과 공을 들이며 노력했던 ‘애’가 종국에서는 자신을 ‘헛애’로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한 번 조용하게 깊게 웃고야 맙니다. 나쁠 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아이러니가 수행의 묘리(妙理)이자 묘미(妙味)가 아니었던가요.    

원제 스님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2012년 9월부터 2년여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이후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좌우명으로 지내고 있다. 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로 현재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중이다. 
저서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2019, 불광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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