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印)속에 새기는 부처님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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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印)속에 새기는 부처님의 숨결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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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전각가 고암 정병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필연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게 이루어진 일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잘 할 수 있었던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상 그 일들을 하고 싶어도 못했지요. 그런데 그 과정들이 결국엔 저를 전각의 길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올해 마흔 아홉의 고암(古岩) 정병례 선생. 현재 전각가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탓에 주위에 있는 분들이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이 방면에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으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그 일들을 할 수가 없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친척이 하던 도장 포를 맡아서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원래 솜씨도 뛰어났던 데다가 생계의 수단도 되는지라 시작한 도장포일. 그야말로 필요한 사람들의 이름을 도장에 새겨주는 일이 그의 직업이 된 것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도장포의 일이 남의 인장을 새겨주는 일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나름대로의 예술성을 거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옛 문헌과 인보(印譜)를 구해다 보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나를 도장 파는 사람쯤으로 알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도장 하나 파는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실용성과 작품성을 찾으려고 애를 썼어요. 이렇게 10년쯤 하다보니 뭔가 보이는 듯 하더군요."

방촌(方寸)의 넓이에 우주를 깃들인다는 전각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그는 스승을 찾아 헤맸다. 정문경(한국 전각가 연구회 회장) 선생을 만나면서 진한(秦漢)의 고법을 비롯하여 전각의 모든 것을 두루 익히고 배웠다. 그러면서 전각의 현대화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래 그는 그때부터 전각가로서 한 길을 걸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길을 걸어온 것이 20년이 넘었다. 그동안의 어려움 들이 오히려 전각가로서의 길로 들어서게 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문득 감사를 드린다. 그러면서 어떨 땐 가끔씩 자신이 전생부터 이 일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동아미술제 특선, 서협과 미협의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큰상을 받아온 터이지만 고암 선생은 굳이 자신이 전각가이기를 고집한다. 대개 전각하면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로 혹은 낙관(落款)을 위해 글씨를 쓰는 틈틈이 익히는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못내 못마땅한 모양이다. 오히려 전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서예와 금석학과 문자의 발전사와 법칙도 익혀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그는 가지고 있다.

전각은 대개 나무나 돌 혹은 옥이나 금같은 데에 문자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문자를 새기는 데에 있어서도 일반 서각이나 판각이 글씨를 쓴 다음 오려 붙이거나 도려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각은 일도일획(一刀一劃)으로 글씨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작가로서의 안목과 솜씨가 없어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서(書)와 화(畵)와 각(刻)이 일체가 되어 이룩한 조형의 아름다움은 한 폭의 추상화 같기도 하고 혹은 고대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상형문자같기도 하다.

생래적으로 타고난 고암 선생의 예술적 감각은 그의 유년 시절 고향의 서정성과 어우러져 그의 작품정서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고향은 전남 나주 동광면. 집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뒤로는 영암 월출산이 가리워져 있었다. 비록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흐르는 영산강을 보며, 월출산에 걸리우는 달을 보며 그렇게 성장해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강이 흐르고 산이 드리워져 있는 고향으로 쉽게 돌아가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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