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업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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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업業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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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감로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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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감로탱>.
1728년, 비단에 채색, 225x282.5cm, 경남 하동 쌍계사 소장.

일본 출판업계의 신화로 손꼽히는 유명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1932~)는, 일제시대 때 부모님과 함께 한반도로 넘어와 유년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합니다. 13세 때, 평양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며 한국 땅에 일본인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는군요. 소련군의 침입으로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 와중에 어머니를 여 니다. 38선을 넘는 필사의 탈출, 남한 미군 난민 수용소에 있다가, 몰래 배를 타고 일본으로 잠입, 귀환하게 됩니다. 일본으로 오고 나서도 온갖 허드레 잡일, 중병, 파산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냅니다. 너무 끔찍스러워 아직도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하는 체험담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사는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타력’이라는 불가사의한 에너지에 눈을 뜨게 됩니다.
“타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 내 운명과 관계된,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
백중기도(우란분재) 입재 신청을 하니 안내하는 보살님이 “영가는 아는 데까지 모두 적으세요.” 합니다. 시댁과 친정에 물어물어 아무리 소급해 올라가 보아도 조부모·증조부모까지, 위로 3대 이상 확인하기 힘드네요. 양쪽 영가들을 모두 적어보니 A4 한 장 가득됩니다. 이분들 중, 혹 굶주린 영가가 계실까 해서 쌀 한 가마니 공양 올렸습니다. 누군
가 존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인연을 맺었다니, 새삼 놀랍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습니다. 올라갈수록 또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만 가는 거미줄 같은 인드라 망입니다. 영가, 업과 전생 등 사람들은 대개 혼자 힘으 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들에 맞닥뜨립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불가항력적인 흐름에 휩쓸리면서, ‘조상님의 묘 자리’를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멋모르고 치달아온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나를 지배하는 커다란 업장의 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전부가 ‘나’라고, 내가 만든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한 것은 ‘작은 인식의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 인식이라는 것도 만들어진 ‘가상’의 껍데기라는군요. 이를 불교에서는 ‘환幻’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상我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 우란분재, 백중날 지내는
우리나라 대표 천도재 불교 4대 명절 중 하나인 우란분절은 속가에서는 백중(百中, 음력 7월 15일)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농사일이 대부분 끝나 한숨 돌리는 민족 대축제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채소·과일·술·밥 등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혼을 불러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하고, 또 수고한 머슴들을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는 날이라 해서 머슴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일종의 노동절과도 같은 날입니다. 이날 사찰에서는 ‘우란분재’라는 천도재를 지냅니다. 과거 7대의 조상님들과 떠도는 고혼(孤魂, 제사지내 줄 사람이 없는 고독한 영혼)들이 극락왕생하라고 재를 베푸는 날입니다. 우란분재와 관련 깊은 불화가 ‘감로탱’입니다. 감로탱에는 우란분재를 지내는 현장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감로탱의 대표적 소의경전(근본으로 삼는 경전)으로는 『우란분경』과 『목련경』이 있습니다. 이 두 경전은 “아귀 또는 지옥의 고통에 빠져있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목련 존자가 부처님의 명을 받들어, 7월 보름날 자자일(自恣日, 하안거 해제일 스님들이 모여 수행 중 자신 잘잘못을말하는 날)에 여러 가지 음식을 정성껏 공양하여, 천상으로 인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 금빛 발우 가득한 성대한 감로단
이번 호에 인연이 된 불화는 <쌍계사 감로탱>입니다.(도판01) 하동 쌍계사를 찾아가는 길에는 십리 벚꽃길과 더불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더 들어가니 하늘서 뚝뚝 떨어진 것 같은 덩그마니 커다란 바위들과 맑은 계곡,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풍경입니다. <쌍계사 감로탱>은 금빛 찬란한 발우가 두 줄 횡으로 길게 나열된 성대한 감로단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도판02) 제사상에 해당하는 이 감로단(또는 감로대)에는 먼저 하얀 쌀이 가득 담긴 어시발우(밥을 담는 제일 큰 크기의 발우)가 13개 줄지어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향완에 향을 피웠습니다. 어시발우 사이사이에는 감로수 찻잔이 놓였고, 그 윗줄에는 오색 떡과 다양한 여름 과일이 줄지어 놓여있습니다. 맨 윗 단에는 위패를 놓고 사이사이를 꽃으로 장식했습니다.(도판03)
감로단 좌측에는 한 무리의 스님들이 범패(불교의 의식음악)를 연주합니다.(도판4) 바라춤도 추시고 법고도 울립니다. 스님은 의자에 앉아 요령과 염주를 들고 독송을 하십니다. 여기 계신 스님들은 하안거를 막 마치고 나오신 스님들일 것입니다. 『우란분경』에는, 스님들이 오랜 수행기간을 거쳐 “계행이 청정하고 도덕을 갖추어 공덕이 한량없는 날” 이라 하네요. 맑디맑아진 스님들의 청정한 원력과 신도들의 간절함이 함께 어우러져, 그 서원이 부처님께 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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