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와 구한말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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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와 구한말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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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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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세 불교의 선구자

대개 경허를 두고 대선사(大禪師), 또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라하여 선계(禪界)의 중흥조(中興祖)로 여기는 데 있어서는 누구나 이의가 없다. 그것은 경허가 차지해야 할 당연한 불교사의 위치라 하겠거니와 필자는 더 나아가서 선계뿐만 아니라 구한말 근세불교의 중흥조로도 경허를 높이 평가해야 하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경허가 선계나 불교계에 있어서 영향력을 끼친 점을 생각는 대로 요약하여 더듬어 볼까 한다.

한국 불교사 속의 사상적 조류(潮流)를 대략 여섯 가지로(敎學, 敎禪一致, 禪宗, 密敎, 淨土庶民佛敎, 實踐的苦육도) 나누어 보는 것이 사상사적 고찰이거니와, 이를 다시 줄여서 선.교(禪敎 ) 양종에 포함시켜 볼 수도 있다. 즉 깨달음의 세계를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로 추구해 들어가는 논리적인 교와 의리(義理)나 지해(知解)를 버리고 실수(實修)를 통하여 일심정원(一心定圓)에 이르러 가는 선으로 대별(大別)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선. 교를 근간으로 하여 여러 사상적 흐름들이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혼합되어 소장(消長)해 왔다. 신라에는 비교적 5교나 9산으로 화려한 문을 열었는가 하면, 고려에도 역시 교의 5종과 선의 양종(兩宗, 曺溪, 天台)으로 풍성한 시대를 맞았다.

그리하여, 불교는 우리문화의 기간으로서 심오한 철학과 탁월한 예술을 낳았고, 정치-경제의 지도 이념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일반 민중의 민속과 풍습등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지배적 영향을 미치면서 성장해 왔다.

불행히도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이조 시대에 들면서 불교의 영향력은 매우 감퇴되고 만다. 특히 이조초의 태종과 세종 시대에 접어들어 외부의 작용에 의해 16종을 폐합하여 선 교 양종으로 못을 박아 놓은 것은 위축의 한 현상이다. 이 선교 양종은 사실상에 있어서는 선종계의 조계종(曹溪宗)에 의하여 단일화되었으며 단일종인 조계종이 여타의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여 가까스로 한국불교의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선종이 주축이 된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적 수행의 풍토는 사찰(寺刹)에서 거의 찾아 볼 길이 없을 정도로 미미해져 버린데 반하여, 도리어 화엄교학(華嚴敎學)의 강종(講宗 )이나 정토신앙(정토신앙)의 염불종(念佛宗)등은 크게 번성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 신앙의 겉과 속이 다른 기형상을 빚은 시대가 이조 중기이후의 불교계의 상황이며, 또한 경허 당시의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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