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대사 속의 불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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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사 속의 불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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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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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한담

불교를 항용 실천적인 종교가 아니라 출세간적인 은둔의 종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불교는 도리어 역사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종교로 보고 싶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가 역사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더욱 신념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불교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때때로 산속의 사찰을 찾았고 어른이 되면서 종립대학을 나와 비교적 비교 적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지만 지금도 필자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 불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역사학, 그 중에서도 우리의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격동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우리의 근대화를 위해 불교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19세기 후반기를 보통 근대화 또는 개화사상의 태동기라고 한다.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시련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안으로 조선왕조의 모순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고 밖으로 외세의 침투로 말미암은 충격과 위협이 나라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우리의 선각자들은 외세의 도전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는 일은 근대화를 위한

개혁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보다 설득력 있게 펴고 있었다.

이러한 주장을 펴고 있던 일련의 선각자들을 우리는 개화사상가 또는 개화파라고 하는데 이들의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은 비교적 정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여 봉건사회를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위정척사파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다. 개화사상은 닫혀져 있던 봉건체제의 문을 활짝 열어 근대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개혁을 통한 개화운동을 추진해야만 하였다. 개화운동은 1884년의 갑신정변을 전후한 시기에 개화파 인사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개화사상의 형성, 개화운동의 추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불교사상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교가 봉건사회를 지탱해 온 지도이념이었다고 한다면 불교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실천적인 종교로서 주목 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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