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목(裸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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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나목(裸木)
  • 관리자
  • 승인 2009.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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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가/꾼/다

  해발 1400m를 오르자니 숨이 차고 힘이 들어 잡념이 없어진다. 양지 바른 곳 폭삭한 솔갈비위에 철버덕 앉아 숨을 돌리니 그저 편하고 조용하다는 생각외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산엘 오르는가? 건초와 낙엽과 나목들로 둘러싸인 산인데도 메말라 보이지 않고 청신한 정감(情感)이 이는 것은 대기 위에 가득찬 숲의 숨소리가 고동치고 있는 탓일까?

  겨울 산사(山寺)는 조용하나 적요하지 않고 추우나 매섭지 않아 좋다. 무엇보다 군더더기를 벗어버린 듯한 나목들의 불투명한 회색빛 병렬(竝列)이 안정감을 주어 좋다. “스님들은 왜 이렇게 놓은데 사는거야?” 아이는 힘이 들때마다 조금 전에 물었었던 사실을 잊은 듯 자꾸자꾸 묻는다. 그럴때마다 나 역시 왜 가야하는가를 절실하게 따져 본다.

  겨울 바람이 쏴아하니 귓가에 실리기 시작하면 마치 지켜야 할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서성인다. 그렇게해서 밀린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미룰 일은 대충대충 치우고 식구들의 눈치를 봐가며 억지로 집을 나선다. 따져보면 딱히 가야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철야정진을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빠져서 안될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토록 열심히 챙기고 날짜를 잡아 새벽길을 나서다 보면 스스로가 알 수 없어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무슨 서류의 마감 날짜처럼 끝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물리, 수학조차 잘해야 하는 여학교 시절에는 대학생만 되면 바랄게 없어보였다. 여대생이 되고나니 유능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고, 그 다음엔 믿음직한 낭군을 만나고 싶었고, 그 다음엔 자애로운 엄마, 그 다음엔...또 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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