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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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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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6.0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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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섬 인문학 강화도』는 교과서 밖 역사서다.
또 반만년 한반도 역사 속 주연이었던 섬, 강화의 하늘·땅·사람·마음에 새겨진 이야기에서 만나는 인문학이다.

 

강화도
저작·역자

노승대·김성환·강영경 외 12인 엮음

정가 20,000원
출간일 2023-05-30 분야 역사/인문
책정보

판형 46배판 변형(180×225mm)|두께 20mm 256쪽|무선| ISBN 979-11-92997-26-1(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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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대 : 문화답사 전문가이자 작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올해의 불서 대상),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김성환 : 전 경기도박물관장. 오랫동안 단군을 연구해왔다. 논문으로 「단군, 신화에서 역사로」 등이 있고, 저서로 『고려시대 단군전승과 인식』, 『조선시대 단군묘 인식』, 『마니산 제사의 변천과 단군전승』 등이 있다.

강영경 : 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이자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 숙명여대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고대전통종교를 전공하며 민속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이경수:강화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 나고 자란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 김포 양곡고에서 역사교사를 하다가 지금은 읽고 쓰고 때론 강의와 답사 안내를 하며 지낸다. 저서로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병자호란』, 『강화도史』 등이 있다.

강호선:성신여대 사학과 부교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고려말 나옹혜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조선 전기 불교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고려시대 국가의례로서의 불교의례 설행과 그 정치적 의미」, 「13세기 강도(江都) 및 개경(開京)의 사찰 운영」, 「고려불교사에서의 구산선문 개념 검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수완:불교미술 사학자이자 우석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인도와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 도상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불꽃 튀는 미술사』 등이 있다.

김경표 :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경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최씨정권의 강화천도와 대몽항전 성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수원 지역사 연구와 다양한 특별기획전 개최, 유물 수집과 관리 등을 맡고 있다.

김태식: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로 오래 활동했으며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를 비롯한 한국고대사 관련 논저를 다수 집필했다.

김선: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관. 고고학을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충청북도문화재연구소, 불교문화재연구소 등에서 24년을 근무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강화 전등사를 비롯해 군위 인각사, 남원 실상사, 북한산 부왕사지 및 중흥사지 등 다수를 발굴했다.

최연주:동의대 교수이자 동의언론사 주간. 동의대에서 「고려대장경의 조성과 각성인 연구」로 문학박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고려대장경연구』,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와 공저로는 『국역 고려사』, 『동아시아의 목판인쇄』, 『고려시대사강의』 등이 있다.

윤후명

시인이자 소설가.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돼 등단한 후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윤후명 소설전집』(전 12권)과 『시전집』(전 2권)을 펴냈으며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님문학상(작품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위로

머리말

 

강화도 여정을 시작하며

반도와 강화의 중심 전등사(유동영)

물의 땅, 빛남의 땅 강화(노승대)

 

. 하늘의 길

단군, 하늘에 제사를 올리다(김성환)

신과 함께, 강화의 무속(강영경)

천주가 처음 찾은 섬, 강화(최호승)

 

. 땅의 길

역사의 섬, 초지진부터 연무당까지(이경수)

개경과 승속을 잇던 사찰들(강호선)

사찰이 숨 쉬는 섬, 강화의 절과 절터(주수완)

전등사에 남겨진 병인양요의 기억(김남수)

 

. 사람의 길

고려 사람들, 강화로 옮기다(김경표)

시대의 천재 문장가, 이규보(김태식)

진실한 앎과 독실한 행동, 강화학파 이건창(김선)

 

. 마음의 길

대장경을 조성하다(최연주)

염원이 빚은 예술의 공간(윤후명)

강화의 마음을 빗질하는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김남수)

 

부록_ ‘강화 나들길’ 34일 걷기(송희원)

 
상세소개 위로

단 한 번의 역사, 단 하나의 질문

‘반도의 중심’ 강화는 어떤 섬인가?

새로운 만남을 앞둔 설렘으로 가방을 챙긴다. 어디론가 떠나기 전에 묻는다. 왜 떠나는가? 수행자의 구도행은 너무 무겁다. 시간이 남으니까, 길이 있으니까, 당일치기가 가능하니까 떠난다는 식은 곤란하다. 그래도 떠남에는 방향과 목적, 그리고 정보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화는 주말이면 도로가 몸살을 앓는 섬이다. 왜 그럴까? 단 한 번의 역사,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강화는 어떤 섬일까?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인천시 강화군의 주도(主島), 경기도 김포시와 접한 섬, 마니산과 참성단, 강화순무와 대몽항쟁…. 그리고?

인터넷에 정보가 쌓일수록, 검색에 매달릴수록 기억과 생각하는 노력은 퇴색하기 마련이다. 안다고 생각했던 강화에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늘 먹었던 먹거리, 보던 풍경, 찾았던 핫스팟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여행으로만 접근하기엔 너무 아쉬운 강화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까?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다는데 무엇을 더 알고 자세히 봐야 할까? 강화의 역사를 인문학으로 새롭게 접근한 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처럼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잘 모르는 강화와의 색다른 만남을 예고한다.

단군, 고려, 대장경, 병인양요, 전등사, 이규보

그리고 섬이 품어온 사람들까지

하늘·땅·사람·마음에 새겨진 이야기 속에서

반만년 역사 속 주연이었던 강화와 만나다!

“강화도는 섬이다. 바람 부는 섬이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는 역사의 흔적이 실려 있다. 강화도의 해안이나 내륙에는 어딜 가나 과거의 유산이 숨 쉬며 역사를 노래한다.”(『나를 채우는 섬 인문학 강화도』 26쪽)

강화하면 쉽게 떠오르는 키워드 몇 가지가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부터 단군, 고려, 팔만대장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 문장가 이규보, 고인돌, 강화순무 등 역사와 인물 그리고 먹거리가 생각난다. 이게 다일까? 이 책은 단순한 사료적 지식 나열에 하나씩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더해 전혀 다른 새로운 강화의 면모를 드러낸다.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을 위한 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알고 있다면 이런 오해는 접어두자. 참성단은 단군을 제사하던 평양의 단군사당과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와 성격이 다르다. 단군은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을 향해 제를 올린 제사장이었다.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꾼 1950년의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한 맥아더 장군보다 130여 년 먼저 상륙작전을 시도한 장군이 있다면 믿을까? 1866년 강화를 침략했던 프랑스군을 물리쳐 병인양요를 끝낸 인물이 바로 양헌수 장군이다. 그는 정족산성에서 반격의 서막을 계획하고 포수로 구성된 조선군 500명과 함께 강화해협 건너 정족산성서 벌인 전투로 프랑스군을 돌려보냈다.

그런가 하면, 강화는 뛰어난 인재들의 고향이자 한 나라의 행정을 책임진 수도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최연소로 과거 시험에 합격한 이건창은 고승들의 찬을 썼고, 『능엄경』을 달달 외웠던 천재 문장가 이규보는 서쪽을 바라보며 강화에서 눈을 감았다. 게다가 한양과 서울보다 먼저 우리나라의 수도였던 곳도 강화다. 고려의 수도일 때 고려인들은 강화에서 팔만대장경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뿐만 아니다. 강화주민은 집에서 많은 신을 포용하며 신과 함께 살고 있고, 기독교는 강화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인천에 상륙한 성공회의 첫 조선인 신자는 강화주민이었고, 가장 오래된 성공회 한옥성당이 강화에 있다.

이 모든 서사가 이 책 한 권에 집약됐다. 여행서처럼 가벼운 정보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서처럼 고리타분하지 않다. 한 권의 매거진처럼 산뜻한 디자인 속에 단행본의 알찬 지식이 담겼다. 두 번, 세 번 다시 볼수록 진한 여운을 주는 영화처럼 강화의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강화행 버스에 올라탄 자신을 상상해보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책속으로 위로

강화도는 섬이다. 바람 부는 섬이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는 역사의 흔적이 실려 있다. 강화도의 해안이나 내륙에는 어딜 가나 과거의 유산이 숨 쉬며 역사를 노래한다. _26쪽

단군에서 시작한 제천의 전통이 성조(聖祖)인 고려 태조를 거쳐 후대의 국왕에게까지 이어졌고,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천도해서도 제천에 힘입어 나라를 보전했다는 역사적인 전통임을 드러냈다. 단군은 그 제사를 주관했던 제주(제사장)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참성단은 단군을 제사하던 곳이 아니라, 단군이 제천하던 곳이었다. 단군을 제사하던 평양의 단군사당(숭령전),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와 달랐다. 참성단(국가 사적)에서의 제천은,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이후 시작됐다. _50쪽

가신을 집 안 곳곳에 모심으로써 가옥은 신전(神殿)이 된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판테온 신전은 로마에 존재한 모든 신들을 위해 세운 만신전(萬神殿)으로 로마인의 관용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강화주민은 집을 만신전으로 만들어 많은 신을 포용하며 신과 함께 산다. _68~69쪽

중생이 극락정토를 향해 반야의 지혜에 의지해 바다를 건널 때 타는 배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반야용선 사상에 익숙한 조선인들에게 ‘구원의 방주’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배 모양처럼 성당을 지었다는 해석이다. 강화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과 십자가 문양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_78쪽

각각의 진과 보는 돈대(墩臺)라는 이름의 해안 초소를 2~5개씩 운영했다. 관측시설이자 방어시설인 돈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나 ‘▭’모양이 대부분인데 ‘⌓’ 이런 형태도 있다. 동서남북 해안을 빙 둘러 54개 돈대가 설치됐다. 강화도 남쪽 해안과 서쪽 해안에 경관이 특히 아름다운 돈대들이 여럿 있다. _87, 90쪽

개경에서 강도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관료들의 신앙활동과 관료-승려의 교류는 강도에서도 계속됐다. 관료들이 원당을 운영했고, 사찰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강도시기 관료를 지낸 김중구(金中龜)는 강도에 들어온 뒤, 집 서쪽의 봉고사(鳳顧寺)를 수리했다. 1242년 100명의 선승을 맞이해 나흘간 공양하다 봉고사에서 세상을 떠났고, 강화도 남쪽에 있던 청동사(靑桐寺) 근처에서 장례를 치렀다. _106쪽

고려가 몽골의 침략이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강화도를 최후의 보루로 결정한 것도 강화도의 영험함을 믿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부처님이 마군들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의 기운이나, 세계 최강의 몽골군과 맞서 싸운 용기를 제공한 강화도의 신비로운 기운은 서로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아도 스님이 창건한 한국 현존의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가 세워졌고, 고려의 팔만대장경 사업의 중심지였으며, 전통불교미술의 대미를 장식한 보문사 마애불이 공존하는 강화도는 그야말로 한국불교사의 산증인이다. _137쪽

반격의 기회를 엿보던 양헌수의 눈에 문득 정족산성이 들어왔다. 11월 5일 주변 형세를 살피던 양헌수는 덕포진 북쪽 손돌무덤에서 불현듯 강화해협 건너 정족산성을 발견했다. 이날 양헌수는 “포수 500명이 바다를 몰래 건너가서 잠입하여 점거한다면 적은 우리 손바닥 안에 있을 것”이라며 정족산성에서 반격의 서막을 올릴 뜻을 세웠다. 강화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으로 들어가는 도하작전을 수립한 것이다. _141쪽

전쟁을 앞둔 조선의 병사들은 부처님이 계신 전등사 대웅보전 곳곳에 이름이며 여러 글귀를 남겼다. 이름에 엮인 인간의 존재 의식,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병인양요 때 승군(僧軍) 50명이 참가했다는 전등사의 호국불교 사찰로서 면모는 단순하지 않다. 조선군의 두려움까지 감싸 안은 부처님의 품이 전등사였는지도 모른다. _145쪽

몽골이 철군한 이후 몽골 침략에 대한 방어책의 논의는 1232년 2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진행됐지만, 쉽게 결정 나지 않았다. 최우는 강화도 천도를 원했지만 대신들 대부분이 ‘개경을 지키고 적을 막자’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당시 최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정무(鄭畝)와 태집성(太集成)만이 천도를 주장했다. 거듭된 논의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고, 6월 최우는 자기 집으로 대신들을 불렀는데 이는 강화천도를 반대하는 대신들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됐다. 그런데도 대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때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 김세충(金世沖, ?~1232)이 회의장에 뛰어들어 천도론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웠다가 최우에게 죽임을 당하자 더 이상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_152쪽

군신기고문이란 임금과 신하들이 일심으로 그 대장경 조판에 즈음해 소원을 적은 글이라는 뜻이다. 대장경 완성은 1251년이니, 저 발원문은 그러한 대역사에 고려가 돌입하면서 그 사업을 부처님께 고하는 맹서문인 셈이다. 이 맹서문을 쓴 그해에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공무원 생활 대미를 장식하는 그때 국가적 대사업의 팡파르를 올리는 글은 당연히 당대 최고의 문호로 일컫는 이규보가 쓸 수밖에 없었다. _172~173쪽

1841년, 강화 전등사의 대조루(對潮樓)를 수리한 일이 있다. 대조루 불사에 참여한 인물 중 강화학파 정제두의 고손자 정문승(鄭文昇)과 이건창의 조부 이시원이 포함돼 있다. 이시원은 1855년 대웅전 중건 시에도 이름을 올렸다. 1899년에는 전등사 시왕전(十王殿)과 전각을 중수했는데, 「강화부전등사 시왕전여각전 중수기(江華府傳燈寺十王殿與各殿重修記)」를 이건창의 아우 이건승(李建昇)이 작성했다. 시주자 명단에 이건창, 이건방, 정원세 등 강화학파의 학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건창 일가가 전등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_184쪽

1238년에 판각된 『마하반야바라밀경』 권13에 ‘대절도(大節刀)’, ‘진사임대절간(進士林大節刊)’으로 새겨놓은 임대절은 자신이 과거급제한 진사임을 밝혔다. 그리고 판각된 시기를 알 수 없는 『자비도량참법』 권9에는 ‘호장중윤김련(戶長中尹金練)’, ‘호장배공작(戶長裵公綽)’이라는 새김이 보이는데, 이는 지역사회의 여론 주도층인 호장이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장경판 판각에 주도한 각수는 다양한 계층과 여러 지역에서 참여했다. _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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