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보리달마 지음 | 일수 옮김 | 정가 | 2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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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0-12-15 | 분야 | 종교(불교) |
책정보 |
판형_152*225mm|두께_37mm|504쪽|양장|2도|ISBN_978-89-7479-871-0 (03220) |
이 책은 보리달마의 법문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진 네 가지 문헌, 『이입사행론』, 『혈맥론』, 『관심론』, 『오성론』을 한 권으로 엮어 정리한 것이다. 원문과 그에 대한 번역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어록 속 가르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선 사상의 발전과 함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 송나라 시기 이전, 선종 초기의 사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리달마 (지은이)
인도 출신이지만 남북조 시대에 중국으로 건너와 활동한 선승으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28대 조사로 꼽힌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보디다르마(Bodhi-dharma), 한역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 또는 달마(達磨)라고 부른다.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520년경 중국 광주로 들어와 남경에서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한 후, 양자강을 건너 북위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 가서 9년 동안 벽관(壁觀)하였다고 한다. 소림사에 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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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 (옮긴이)
스물세 살에 우연히 만난 스님을 따라 대흥사로 출가하였다. 본사는 백양사, 은사 스님은 학봉 지선 스님. 1983년 해인사 강원과 1984년 해인사 율원을 졸업하고, 해인사 선원에서 첫 안거를 시작한 후, 통도사, 불국사, 봉암사, 백양사, 수도암, 칠불사 등 제방 선원에서 64안거를 성만했다. 백양사 운문선원 선원장 및 유나, 서울 성북동 법천사 운문선원 선원장, 조계사 자율선원 선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백양사 운문선원 수좌로 수행 정진하고 있다.
들어가며
해제 : 중국 선종의 성립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혈맥론 (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오성론(悟性論)
부록
참사람 결사문 / 참사람 서원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의 법문을 엮은
네 가지 문헌을 한 권으로 읽는다
한 인물에 대해 전설 같은 일화가 많다는 건 그의 행적이 비범하였음을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국의 불교 관련 인물 가운데 보리달마만큼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당대의 권력자였던 양 무제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여 노여움을 산 이야기, 그래서 갈대를 꺾어 타고 양쯔강을 건너 소림사에 머물며 9년간 면벽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독살당하였으나 다시 살아나 신발 한 짝을 지팡이에 꿰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 등등. 보리달마에 대해서는 진위여부를 가릴 수도 없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의 일생은 물론, 생몰연대까지도 정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였던 화엄종이나 천태종 같은 종파들과는 달리,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행을 강조하였던 보리달마의 가르침은 당시 중국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발전한 선종은 훗날 중국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또한 보리달마의 가르침은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 불교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스님들에 의해 선종이 우리나라로도 전래되었고, 또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참선 역시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중국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할 때 보리달마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에서는 보리달마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네 가지 문헌을 소개한다. 바로 『이입사행론』, 『혈맥론』, 『관심론』, 『오성론』이다. 원문과 그에 대한 번역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어록 속 가르침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때로는 달마 대사가 제자와 주고 받은 문답 형식으로, 때로는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설법 형식으로 마음이 만법의 근원이며 마음을 깨치지 않고서는 결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알려준다.
초기 선종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 ‘달마어록’
그러나 ‘달마어록’이라고 부르는 기록을 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 문헌들은 보리달마의 법문을 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보리달마 당시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리달마의 생몰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국 남북조 시대인 6세기경의 인물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달마어록’이라고 불리는 『이입사행론』, 『혈맥론』, 『관심론』, 『오성론』 등의 문헌은 당나라 초․중기인 7~8세기에 이르러서야 성립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보리달마의 법문만을 오롯이 담고 있는지, 혹시 후대의 첨삭이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설사 달마어록이 보리달마의 법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대의 우리가 달마어록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이 ‘어록’ 속에는 초기 선종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벽암록』이나 『종용록』, 『전등록』, 『무문관』과 같은, 여러 조사(祖師)들의 화두를 선별하여 엮은 선어록이 출현한 것은 송나라 때로, 보리달마가 입적하고도 4~5세기가 지난 이후였다. 하나의 법맥으로 이어져 오던 선종이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뉜 것을 넘어 일곱 종파로까지 나뉘어 있었던 때이다. 그러다 보니 깨달음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수행에 대한 관점 등이 선종 초기와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마어록’은 성립 시기가 그 이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선 사상의 발전과 함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기 전, 초기 선종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달마어록’에 등장하는 보리달마는 곧 ‘초기 선종의 이상’을 인격화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4안거를 성만한 수좌 스님의 군더더기 없는 직역으로
원전의 맛을 오롯이 살렸다
이 책을 옮긴 일수 스님은 64안거를 성만한, 결코 만만치 않은 수행 이력을 지녔다. 백양사 운문선원 선원장과 유나를 지냈고, 현재 백양사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는 수좌이기도 하다.
일수 스님은 선방에서 안거를 할 때는 대중과 함께 수행 정진을 하였지만 해제 이후 홀로 지낼 때는 ‘달마어록’을 읽고 그 뜻을 되새기며 수행이 침체되거나 해이해지지 않도록 다잡았다고 한다. 일수 스님이 여러 선어록 가운데에서도 ‘달마어록’을 꼽아 번역한 까닭이다.
선어록을 놓지 않았던 스님의 수행 경험은 재가불자들을 지도하는 데도 이어졌다. 평소 일상생활 속 선 수행을 강조해온 스님은 재가불자들의 참선 수행을 지도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실참을 하기 전 선어록 강의를 먼저 한 이후에 참선으로 이어지도록 지도했다. 달마어록을 강의할 때면 재가불자들과 함께 한 구절씩 읽고 번역하며 공부하였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일수 스님의 수행과 대중과 함께한 강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대중과 함께 공부한 내용을 묶어 정리한 뒤, 탁마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수차례 진행하면서 원고를 다듬었다. 해설은 덧붙이지 않고 원전의 내용에만 집중, 직역하고 있어 독자 스스로가 원전의 맛을 오롯이 느끼고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달마어록은 역사상 실존 인물로서의 달마 자신이 쓴 것도 아니고, 그의 설법을 전승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 내용은 모두 달마를 조사로 받드는 초기 선종 사람들의 여러 가지 주장을 모은 것으로, 중국 선의 이상을 인격화한 것이며 역사적인 다른 인물들의 일반적인 선어록과는 상당히 성격을 달리한다. 유의해야 할 것은 공안으로서 달마의 전기가 훗날 선 사상의 발전과 더불어 여러 가지 변화를 보여 주는 것에 비해, 그의 주장을 전해 주는 어록은 모두 당나라 초기부터 중기 사이에 성립되었고, 그 이후에는 아예 잊히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 본문 23쪽 ‘해제 : 중국 선종의 성립’
若夫入道多途나 要而言之하면 不出二種이니 一은 是理入이요 二는 是行入이니라.
대체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길이 많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이치로써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는 수행으로써 들어가는 것이다.
— 본문 35~36쪽
問曰 何名爲法이닛고.
答曰 心如法不生하며 心如法不滅故로 名爲法이니라.
어떤 사람이 질문했다. “어떤 것이 법입니까?”
달마 스님이 대답했다. “마음은 법과 같아서 생겨나지 않으며 마음은 법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법이라고 말한다.
— 본문 70쪽
心不住色하며 不住非色하며 心不住住하며 亦不住不住니 心若有所住하면 卽不免繩索이요.
마음은 색에 머물지 않고, 색이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마음은 머무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머물지 않는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마음이 머무는 바가 있으면, 얽매임을 면하지 못한다.
心若有所作處하면 卽是被縛이요. 心若重法하면 法留得儞니라. 心若尊一箇法하면 心必有所卑니라.
마음이 만약 짓는 처소가 있으면 이것이 곧 얽매이는 것이요. 마음이 중시하는 법이 있으면 법이 너를 잡아가둔다. 마음이 한 개의 법을 존엄히 여기면 마음은 반드시 천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 본문 93~94쪽
佛心은 不可以有心으로 知며 法身은 不可以像으로 見이니 齊知之所解者는 是妄想分別이며 從儞作種種解者는 皆是自心計校며 自心妄想이니라.
부처님의 마음은 마음[有心]으로써 알 수 없으며 법신은 형상으로써 볼 수 없다. 알음알이로 이해한 것은 모두 망상분별이다. 너의 마음을 따라서 갖가지로 이해하는 것은 모두 자심으로 헤아리는 것이며 이러한 갖가지 자기 마음의 망상이다.
— 본문 163쪽
從無始曠大劫以來로 乃至施爲運動하는 一切時中과 一切處所가 皆是汝의 本心이며 皆是汝의 本佛이니 即心是佛도 亦復如是하니라.
비롯함이 없는 광대한 겁, 그 후로부터 베풀고 움직이는 데 이르기까지 일체의 시간과 일체의 장소가 모두 그대의 본심이며, 이 모두가 그대의 본래불이니라.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 본문 207쪽
若識得施爲運動靈覺之性하면 汝即諸佛心이니라.
만일 베풀고 움직이며 신령스럽게 깨닫는 성품을 알면 네가 곧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前佛後佛이 只言傳心이요. 更無別法이니 若識此心하면 凡間의 一字不識도 亦是佛이니라.
앞 부처와 뒤 부처가 단지 마음 전하는 것을 말함이요, 다시 별다른 법은 없으니 만약 이 법을 알면 범부가 한 자를 알지 못해도 또한 부처이니라.
— 본문 277쪽
佛性者는 覺也라. 但能自覺하야 覺智明了하야 離其所覆則名解脫이라.
불성(佛生)이란 깨달음이다. 다만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음의 지혜가 분명하여 무명에 의해 덮여 있던 것을 벗겨 내면 이것이 곧 해탈이다.
故知一切諸善이 以覺으로 爲根이니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선법은 깨달음으로 근본을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因其覺根하야 遂能顯現諸功德樹하며 涅槃之果가 由此而成하나니 如是觀心을 可名爲了니라.
그 깨달음이라는 뿌리로 인하여 모든 공덕의 나무가 자라나서 열반이라는 열매가 이렇게 이루어지나니 이 같은 마음을 관하는 것이 (마음을) 가히 아는 것[了達]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본문 300~301쪽
我本求心心自持 求心不得待心知
내가 본래 마음을 구하였으나 마음은 그냥 그 자리에 있더라.
마음을 구함에 마음을 기다려 알려고 하지 말라.
佛性不從心外得 心生便是罪生時
불성은 마음 밖에서 따로 얻을 수 없음이니,
마음이 일어나는 즉시 죄가 일어나는 때이니라.
我本求心不求佛 了知三界空無物
내가 본래 마음을 구하고자 함이지 부처를 구한 것은 아니니,
삼계가 공하여 한 물건도 없는 줄을 알지니라.
若欲求佛但求心 只這心心心是佛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만을 구할지니,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부처이니라.
— 본문 407~4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