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의 향기] 상계동 수락산 학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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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의 향기] 상계동 수락산 학림사
  • 사기순
  • 승인 2007.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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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의 향기/ 학이 알을 품으니 온 법계에 불광이 충만하더라

헤아릴 수없이 많은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 속에서도 꿋꿋한 푸르름으로 버텨오던 가로수가 반나(半裸)가 되는 계절이다. 쟂빛 빌딩 숲 속에서 이리저리 나뒹구는 황갈색 이파리의 한숨 소리를 듣노라면 짐짓 마음이 허허로워지기 쉽다.

도심의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마음이든지, 그저 이유없이 황량해진 빈 가슴이든지 저문 가을은 여심(旅心)을 촉발시키나보다.

우리들의 여로(旅路)는 그리 멀지 않아도 좋다. 서울특별시, 북에는 삼각의 연이은 봉우리가 서북으로는 인왕산ㆍ모악산이 동북으로는 낙타산ㆍ수락산이 남에는 관악산이 그 산세 수려함을 드러내면서 첩첩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자랑거리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명산에는 예외없이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옛가람이 자리하고 있으니, 마음의 고향 찾아 나선 중생에게 어찌 크낙한 위안이 되지 않으랴.

서울의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불암산 북쪽으로 솟아나 도봉산과 마주 보면서 의정부까지 길게 뻗쳐 있는 수락산, 아직은 행락객들의 발길이 적게 닿아 대자연의 넉넉함과 솔바람 소리가 고즈넉하게 간직되어 있는 수락산행은 늦가을의 여수를 잠재울 만했다.

수락산 남쪽 기슭 울창한 송림 속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천년 고찰 학림사. 속세로 돌아가기 바쁜 나그네에게 학림사는 최종 목적지일 수밖에 없다.

서출동류(西出東流)라. 옛부터 가장 좋은 약수로 받들어진 감로수가 학림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먼저 끈다. 아니 얄궂게도 약수만 노리고 온 등산객도 적지 않아 보인다. 하얀 물통 들고 학림사에 오르는 이들이 줄을 잇는데 그들 중 부처님을 뵙고 가는 이들은 반에 반이나 될까? 그래선지 경내에는 곳곳에 부처님의 말씀이 쓰여져 있다. 길가 무심히 졸고 있는 바위 위에도, 사찰 초입의 큰 나무 아래에도…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쓰여있는 부처님의 말씀엔 스님들의 정성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악을 행해 그 죄를 받고 스스로 선을 행해 그 복을 받는다. 죄도 복도 내게 매이었거니 누가 그것을 대신해 받으리.” “남의 허물만을 꾸짖지 말고 힘써 내 몸을 되살펴 보자. 사람이 만일 이렇게 깨달으면 그 때문에 다툼은 길이 쉬어지리라. 『법구경』”

대웅전, 설법전, 오백나한전, 삼성각, 선불장(選佛場), 요사채 등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학림사는 지금부터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 서기 671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그 후 고려 공민왕 때 왕사였던 나옹(懶翁)스님께서 주석하시면서 중흥불사를 이룩하여 승풍을 드날리고 혜명을 이어왔던 수도도량이다. 불행히도 조선조 선조(宣祖)30년 (서기 1597년) 정유병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仁祖)2년 서기 1624년에 무공(無空)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조선조 때는 오백나한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기도처였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상궁들만 드나들며 왕가의 부귀복록과 자손창성을 발원한 자복사찰이기도 했던 학림사의 영고성쇠를 살펴보자니 이 나라 불교의 흥륭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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