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36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무등산(無等山), 불교의 여러 경전에 보이는 ‘무등등(無等等)’의 자구(字句)가 자꾸만 저 산을 불교의 산으로 읽게끔 한다.
무등(無等), 계급 없는 만인 평등의 사상이 또 부처님께서 몸소 보이신 가르침 속에 차고 넘치니 과연 무등산은 부처의 산, 경전의 산이라 해도 틀림이 없겠다. 그래서 호남의 우뚝한 무등산은 호남정맥의 여러 산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으뜸이 된다.
이 산은 신라시대에는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는 서석산(瑞石山), 조선 초기에 무등산으로 불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옛 시와 글을 살펴보면 무등산보다는 서석산이란 이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광주 시민의 자랑으로 험한 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등산은 남녀노소 오를 수 있는 너그러운 흙산(土山:육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심지어 입석대, 서석대니 하는 거대한 바위조차도 위압감을 주기 보다는 ‘정안수’ 올려진 장독대처럼 친근하기만 하다.
광주 시내를 정신없이 걷다가 무등산을 한번 쳐다보라. 그러면 거기서 자식들 제 갈길 떠나보내는 어머니처럼, 흐트러진 걸음이며 허튼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듯 믿음직하게 서있는 산을 볼 수 있으리라.
“광주의 진산을 무등산이라 하는데, 서석산이라고도 한다. 그 형세가 웅장하게 서리어 있어 다른 여러 산에 견줄 바가 아니다. 산 동편에 암자가 있으니 규봉암(圭峯菴)이라 한다. 그 곁에는 서석(瑞石)이 모여 서 있다.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것, 땅을 굽어 보고 있는 것, 누운 것, 일어선 것, 묶음을 이룬 것, 홀로 선 것 등등이 있는데 높이는 수백 척이나 되고, 네 면은 마치 옥을 깎아 놓은 것만 같다. 이를 서석규봉(瑞石圭峯)이라고 하는 것은 뜻이 대개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 물이 잔잔히 흐르는데, 돌 뿌리에서 쏟아져 나와 비록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 예전 의상 대사께서 보고 기이하게 여겨 처음으로 정사(精舍)를 창건하였다. 이어 보조 스님과 진각 스님이 진체(眞體)를 길러 득도하였으니 꽃다운 자취가 여태도 남아 있다. 그 삼존석(三尊石)과 12대(臺)를 보면 대개 떠올려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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