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해산(海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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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산(海山) 스님!
  • 관리자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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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목소리

왼쪽 손에는 누렇게 변한 풀을 안고 오른쪽 손에는 흙 묻은 호미를 들고서-.

군데군데 떨어져 낡은 배잠뱅이 바지가랭이를 좌측은 여섯 번 걷어 올린 듯하며 우측은 아래로부터 네 번 걷어 올린듯, 그리고 낡아빠진 배잠뱅이 여러 곳엔 밭고랑의 진흙들이 잔뜩 묻은 모습으로 어슴프레 희미하게, 그분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지극히 전형적인 촌부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큰스님’의 자태와는 거리가 멀었고 때묻지 않아 욕심없이 사는 그냥 농부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중스님들과 함께 운력을 마치시고 부산불교청년회 회원들이 3박4일 일정으로 수계받으러 왔다는 전갈을 듣고 부랴부랴 설법전 툇마루를 막 올라서는 중이셨습니다. 나는 그 때 옆의 학생에게 “저 스님이 이곳 표충사 주지스님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해산(海山)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초라하고(?) 청정하신 그분이 바로 해산 스님이셨습니다.

1969년 늦은 겨울 33년 전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이는 20대의 청춘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손이 시려오는 차가운 개울가에 나가서 얼음 같은 물에 손을 담그며 몸을 씻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할 때였습니다. 우리는 넓은 대중방에 나란히 동그랗게 둘러앉아 준비해간 바룻대를 펴고 난생 처음 바루공양이란 것을 했습니다. 30여 명의 학생들과 청장년들이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소리도 나고 서투르기 그지없어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진행 중일때 해산 스님께서는 “소리 내고 먹어도 괜찮으니 천천히 많이들 드세요.”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너그러우셨습니다. 자애로우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일행들이 3박4일의 바루공양을 한 것이 지금껏 기억에 남습니다.

33년 전 기억의 저편, 나는 지금 그 곳 해산 스님이 계시던 밀양 표충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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