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般若)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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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般若)의 사랑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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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가 깃든 산사 기행/지리산 반야봉, 길상봉 문수대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젊은 날이었는데 눈 덮인 산과 나무 그늘진 산 속을 쏘다녔다. 그 어디쯤 헛투정을 해대도 그 품에 넉넉히 안아 주는 지리산이 있었다. 산은 기실 그랬다. 봄이면 산 아래부터 울긋불긋한 꽃들로 마음을 살랑이게 했고 여름이면 풀내음 가득한 공기로 편안한 숨을 쉬도록 해주었다. 가을엔 지천으로 널린 열매들로 몸도 마음도 배부르게 했고 투명한 겨울산은 먹칠해놓은 마음을 환하게 비쳐주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오고 가는 길 먼발치에 반야의 듬직한 모습이 서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후 몇 번 눈인사를 나누었을 무렵 나는 반야와 마고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老姑壇)에는 마고(麻姑) 혹은 선도성녀(仙道聖女)라는 산신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눈 앞에 서 있는 산, 반야봉(般若峰)의 산신 반야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야는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면 마고는 산 아래 꽃향기를 어루만지고 온 싱그러운 바람과 산 안개를 불러 모아 반야봉을 휘감아 봄 정취에 푹 빠지도록 했다. 초여름부터는 온산에 주홍빛 나리꽃을 피워 반야에게 꽃을 선물했다. 꽃이 피고 지길 몇 날 며칠 그리고 또 수천 수만 번, 그러나 돌아앉은 반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법(佛法)의 참다운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반야에게 마고의 그런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하지만 마고 역시 단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 넓은 가슴으로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줄 것을 믿고 또 믿었다. 가을 단풍, 겨울엔 희디흰 눈으로 공부에 지친 반야의 적막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이제 반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마고는 반야를 위해 옷을 짓기 시작했다.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없는 옷, 마고는 달빛에서 은빛 실오라기를 빼어 내어 반야를 위해 찬란한 옷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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