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 순례기 ] 31.‘침북(靑補) 토굴’에서 아침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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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 순례기 ] 31.‘침북(靑補) 토굴’에서 아침해를
  • 김규현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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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 순례기31

중국 친구들과 삼예 사원의 객실에서 묵은 하루저녁은 여러 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티벳 민족의 종교관과 그들의 앞날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모두 이 티벳땅에 처음 온 터이고, 자칭 타칭의 식자들이기에 감회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대개의 외국인은 아무리 절친한 중국친구라도 티벳의 정치적 문제들은 서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들이 자청하여 화제를 삼기에 나도 자연히 대화에 조심스럽게 끼어들게 되었다. 그들이 직접 본, 1966년부터 10년간의 ‘문화혁명’ 기간에 행한 만행의 실상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놀라워하며 반성하는 기색이었다.

한 위정자의 정권유지의 욕망이 초래한 결과는 천여 년 동안 축적되어 내려온 한 민족의 귀중한 유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려 무려 전국토의 사찰 80%나 파괴하였으니, 그것도 그럴 수밖에.

이곳 삼예 사원도 그 기간 중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요즈음은 점차 복구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개의 중국인이 유물론(唯物論)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그래도 이 중국친구들이 이 땅의 민초들의 유일한 희망인 신앙심을 이해해주는 것에 대해 웬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착잡함을 금할 길 없었다. 이 티벳땅이 역사적·실제적으로도 자기네 것이라는 ‘중화사상’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4시에 또 하나의 명소 침북으로 가는 트럭을 예약하였기에 잠이 든둥만둥 뒤척이다가 트럭에 올랐다. 거리로는 15Km밖에 안 된다지만 길이 워낙 험하기 때문에 대개는 일찍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동북쪽 산기슭에서 차를 내려 계곡을 타고 올라가니 산 중턱에 침북 사원이 나타난다. 수십 명의 여승들이 아침예불을 드리는지 경내는 요란하였다. 차를 몇 잔 얻어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해가 뜰 무렵에 침북에 도착하였다.‘침북’이란 옛날에 ‘침’씨 가족이 수행을 한 후에 원만성취를 얻은 ‘북’, 즉 계곡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후로 수많은 수행자들이 토굴을 짓고 공부를 하여서 유명한 수행처가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파드마삼바바의 체취를 맡고자 함이었다. 그는 삼예가 건축되는 동안 이곳에서 면벽수도를 하였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티벳사자(死者)의 서(書)』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의 토굴터로 가는 가파른 길 양옆에는 많은 토굴이 있었는데, 아침 차를 끓이는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몇몇 노승이 우리의 인기척에 문을 열고 내다보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조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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