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속에 뜬 달맞이꽃 두 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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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속에 뜬 달맞이꽃 두 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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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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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말(馬)처럼 뛰는 말(言) 생각하기

그날이 그날이었을 것이네 그려. 손을 꼽아보니, 장날이 아니었나 싶으이. 장날, 하니 어릴 적 추억 하나쯤 꺼내들고 싶겠지만, 자전거 타고 자반 고등어 한 마리 사러 가는 풍경은 기억 속에만 있는 걸세. 4일, 9일에 맞춰 선다 하여 5일장으로 불리지만, 대도시 수퍼만큼은 아니라도, 읍내에는 농협 수퍼도 있어, 돈이 없어 못 사지, 물건은 참 많기도 많다네. 해도, 굳이 읍에 나갈 필요는 없네. 하루에도 서너 번, 두부, 달걀, 생선, 과일, 참기름, 채소 따위를 실은 타이탄 트럭 장사치들이 스피커 앞세워, 다녀간다네. 편한 세상일세그려. 아무튼 5일장, 그 장이 서는 날이었을 것이네. 예전에는 우시장도 섰을 만큼, 제법 규모도 커, 인근 마을에서도 다녀 가는 등 성시를 이루었지만 이젠 길 가에 스러진 잡풀마냥 헛헛하다네. 손 내저으며, 자네는 그랬지. 별 게 있겠느냐고. 자네 말이 맞네만, 그래도 시골 장은 장이질 않던가?

내 이곳 온 지, 일 년이 넘었네. 작년 봄,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돌아가신 아버님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내게, 그랬지. 그건, 낙향이 아니야, 도피지, 암, 도피고 말고. 나이 사십 넘어, 무슨 대우 받겠다고 시골 살림 자청하고 간단 말인가. 내내, 도시 물 먹은 사람이 무슨 청승이냐, 이파리만으로 콩잎인지 깻잎인지 구별할 줄 모르면 내려가지 말라고, 자네 그랬지? 그랬네. 옳고 옳은 말씀입내 그려. 하지만, 왜 있잖는가, 도라지꽃 그 하양과 보랏빛 어우러진, 달빛 사위여 가는 그믐밤에 보는 아스라한.

그런 장날이었지, 자네 연락없이 내려온 날이.

…나, 터미널이야… 응? 무슨? …여기, 자네 동네… 기다려. 시골 택시 요금은 메타 꺾는 게 아니니까. 괜히 바가지 쓰질 말고… 아니야, 기껏해야 오천 원이라며? 타고 가지 뭐. 동네 이름이 뭐라고?… 여기 수평마을이라 해도 그렇고, 아, 봉바위라 하면 알 걸세.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으니, 내 감세. 기다리게… 그럴 말고, 농협 수퍼에설랑 술이나 받아 가지, 뭐… 쓸데 없이 돈 쓰지 말구, 기다리라니깐두루… 됐네, 이 사람아. 저녁 끼니는 지웠으니, 내 알아서 찾아가지… 아니, 그러지 말라니까!

끊어진 전화기 속에서 들려나는 뚜, 뚜, 뚜, 소리.

가만가만. 소리라 했겠다, 소리? 물체의 진동에 의해 일어나는 음파가 귀청을 울려 일어나는 청각(聽覺)이라고 풀이한 사전적 의미로, 소리를 알 수 있는가? 장마 지난 어느 날 아침, 저 앞산, 긴 머리카락 날리듯 풀려 올라가는 안개의, 그리고 구름을 몰아내며 찬연히 빛나는 해의 기기재 켜는 소리? 아니면, 바람 소리? 그 소리들은 어떤 빛깔이던가. 귀기울이면, 만져지나? 나무 잎새 사이로 지나면서, 간지르는, 낮은 풀잎 밑둥을 스치는. 빗소리는 눈에 보이던가? 기와 지붕에 내려, 부딪치는, 마당 흙 위를, 빠르게 뛰어가는 다람쥐처럼. 그 어느 것을, 소리라고 하는가.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사고 방식이 아닐 수 없잖는가? 자연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빚어낸 오류, 그 자체일세. 소곤소곤, 수런수런 말소리, 울고 웃는 소리, 분노로 토해내는, 환희를 못이겨 밀려나오는 소리, 소리들,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고 부딪쳐야만 만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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