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서운사에는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조용하고 깨끗한 제법 큰 묘지가 있다. 묘지 옆에 는 아름다운 큰 호수가 있고 멀리 호수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동네 해수욕장이 있다.
나는 가끔 혼자서 생각할 일이 있거나 조용한 차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는 커피 한 잔 사들고 멀 리 큰길과 해수욕장, 그리고 가까이 단정하게 꾸며진 비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진 묘지의 한 모퉁이 를 찾아간다.
굳이 세계의 방송국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다이애나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조용하게 이름없 이, 그야말로 소박하게 떠나가는 사람들을 나는 이곳에서 자주 만난다.
나 또한 어느덧 살아온 세월보다는 남은 세월이 짧다는 생각이 스치면, 그것도 요즘처럼 사고가 많고 원인 모를 병이 많은 때에 완전히 보장된 시간들이 아니고 보면 웬만한 삶의 문제들이나 갈 등쯤은 묘지를 채 다 돌기도 전에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저절로 선명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은 스스로 젊다는 생각과 살아야 할 시간이 충분히 많다고 느끼면서도 가 지런하게 널려진 비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따로 기도하거나 애써 누구를 미워할 필요를 느끼 지 못한다. 또 뭔가를 무리하게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마저 사그러진다. 게다가 때 아니게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사망소식을 미처 준비없이 접할 때면 더욱 그렇다.
한동안 찌던 더위도 가시고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어제 막 시작된 학교공부는 벌써부 터 해야할 숙제가 태산 같다. 그래서 오늘을 넘기면 웬지 또 불광의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 에 이곳 무덤가를 찾았다.
호수 건너편에는 차들이 제법 바쁘게 오가는데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묘지의 비석들은 마냥 한가 하기만 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예쁜 꽃들 로 장식된 비석들과 세월 속에 잊혀진, 한때 그들을 기억했던 사람들마저 가버린 이끼낀 비석들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선 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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