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용이 나르샤] 용이 떠받친 백제 불국왕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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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용이 나르샤] 용이 떠받친 백제 불국왕토의 세계
  • 조경철
  • 승인 2023.12.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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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의 용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및 제공
향로는 아래부터 받침의 용, 몸체의 연꽃, 뚜껑의 겹겹이 쌓인 산, 꼭대기의 봉황으로 이어진다. 

금동대향로의 발견

백제의 멸망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를테면 ‘의자왕’과 ‘삼천궁녀’ 같은 것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후대는 멸망의 역사로 백제의 역사를 평가했다. 모든 나라는 멸망한다. 멸망이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을까? 

나라에 대한 평가는 멸망이 아닌 그 나라가 해낸 역사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백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다. 백제 칠지도(七支刀)에는 “先世以來 未有此刀(선세이래 미유차도)”, 즉 ‘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라는 자부심 넘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후 백제는 가운데 보살이 들어간 태안마애삼존불상, 앉아 있는 미륵보살을 한쪽에 배치한 서산마애삼존불상, 미륵의 삼회설법을 상징해 탑을 세 개 세운 익산 미륵사,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가 어우러진 유불도 삼교의 백제금동대향로 등을 만들어냈다. 역사 이래 이런 삼존상, 이런 절, 이런 향로가 없었다고 할 만큼 많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작품들이었다.

나라가 건국되면 이전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새 나라로 계승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했다. 계백의 5,000 결사대가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적군이 사비도성에 가까워지자 동쪽 도성 밖 왕릉의 명복을 빌던 능사도 바빠졌다.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은 급하게 땅에 묻었다.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1993년 12월 12일 왕릉 옆 주차장을 만들기 전에 실시한 발굴이 막바지에 접어든 날이었다. 쌩쌩 부는 찬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발굴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뭔가 나타났다. 향로였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1,333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신라, 고려, 조선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는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향로가 발견되자 말 그대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높이 61.8cm, 무게 11.8kg의 거대한 크기뿐 아니라 구성요소 각각의 조각 솜씨가 일품이었다. 처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받침의 용과 꼭대기의 봉황이었다. 그래서 처음 붙여진 이름이 ‘금동용봉향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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