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김수열 ‘나무는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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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김수열 ‘나무는 겸손하다’
  • 동명 스님
  • 승인 2022.11.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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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경주 계림의 소나무
경주 계림의 소나무

나무는 겸손하다
_김수열

물오른 가지마다 새순 돋고
크고 작은 잎사귀들은
밥 짓는 소리 다투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에
마음 열고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귀 기울인다

까치밥 남기고
무성한 잎사귀들을 내려놓을 즈음
그리움도 외로움도 안타까움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나무는
한때 세상을 향해 열어두었던 귀 닫고
동안거에 들어 묵언정진한다

나무를 알아도
그 마음 멀리하기에 사람들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

(김수열 ​시집, ‘생각을 훔치다’, 삶이보이는창 2009)

소나무숲길을 걷는 사람들
소나무숲길을 걷는 사람들

[감상]
오늘날에 유행하는 새로운 장례법 중 하나가 수목장입니다. 수목장은 나무 밑에 유골(재)을 묻는 것이지요. 그것으로 마무리해도 좋은데, 사람들은 나무에 또는 나무 앞에 표식을 남기어 누구의 유골이 묻혔다는 것을 알립니다.

수목장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다음 생애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일까요? 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일까요?

시인이 바라보는 나무의 삶 들여다봅니다.

첫째, 나무는 자기 말을 하기보다는 항상 귀를 기울이기 좋아합니다. 물오른 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도 나무는 침묵입니다. 꽃이 피어도 침묵입니다. 대신 세상에서 들려오는 “밥 짓는 소리 다투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에/ 마음 열고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귀 기울입니다.

둘째, 나무는 끝끝내 인욕합니다. 열매를 다 먹고 싶어도 까치밥은 남기고, 아깝도록 풍성한 잎사귀들도 다 내려놓고, 그리움도 외로움도 안타까움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둡니다. 바람이 가지를 찢어도, 사람들이 톱을 갖다 대도 도끼로 찍어도 나무는 참습니다.

셋째, 나무는 겨울에는 귀도 닫고 동안거에 들어 묵언정진합니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입은 닫더라도 귀는 열어두었는데, 겨울에는 귀도 닫고 동안거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에너지로 버티면서 재충전한 후에 봄에 기지개를 활짝 켜는 것이지요.

나무처럼 살아가려면 시인이 파악한 나무의 삶을 알고 배워야 하는데, 쉽지 않겠지요. 나무를 대하는 사람들을 시인은 이렇게 파악합니다.

“나무를 알아도
그 마음 멀리하기에 사람들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

하기야 수목장을 한 후 그 앞에 이름을 새겨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무가 되어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끝끝내 인욕하고, 겨울에는 귀도 닫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무를 닮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나마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습니다.

나모 나무붓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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