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구광렬 ‘굽은 나무가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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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구광렬 ‘굽은 나무가 더 좋은~’
  • 동명 스님
  • 승인 2022.11.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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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굽은 소나무
굽은 소나무

굽은 나무가 더 좋은 이유
_구광렬

내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곡선이 직선보다 더 아름답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높은 곳만 바라보지 않고
낮은 것도 살폈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곡선이 직선보다 더 부드럽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땅에다 뿌리를 두고 하늘을 기리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일까

비틀대며 살다 보면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의 가치를 알게 되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 두 번 살피다 보면
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구광렬 시집,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고요아침 2006)

[감상]
구광렬 시인이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둘째, 굽었다는 것은 높은 곳만 바라보지 않고 낮은 것도 살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곡선이 직선보다 더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넷째, 굽었다는 것은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땅에다 뿌리를 두고 하늘을 기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삶의 터전은 땅인데 마음은 하늘에 있는 것이니까요. 어떤 나무는 한눈팔지 않고 쭉쭉 하늘을 향해 뻗기도 합니다. 그러나 굽은 나무는 비틀대기도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가지 못하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두 번 살피다보면” 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굽은 나무를 좋아한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굽은 나무도 좋지만 곧은 나무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굽은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굽은 나무는 굴곡이 많은 사람의 삶을 상징합니다.

굴곡이 많은 사람은 성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가지 못합니다. 사자성어로 말하면 파란만장(波瀾萬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어울립니다. 갖가지 곡절과 온갖 시련을 겪을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양의 창자는 엄청난 양의 풀을 소화하기 위해 아홉 번이나 꺾어지면서 길고 길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구절양장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 길게 통과한 인생길의 은유라 하겠습니다.

구광렬 시인은 굽은 나무에 대한 사랑 고백을 통해서 구절양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저도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며 굽은 나무처럼 살아온 사람들의 남은 생애가 건강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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