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김남극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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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김남극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 동명 스님
  • 승인 2022.10.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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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청도 운문사 법륜
청도 운문사 법륜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_김남극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어디론가 가야 하고
공기압보다 큰 짐을 실어야 하고
집 나서면 헝클어진 길을 찾아야 하니

​굴뚝 모퉁이에 낡은 리어카
어둠에 바람이 빠졌다가
햇살로 바람을 뿍뿍 자아넣고
엉크런 바큇살에 녹이 저승꽃처럼 피어도
이젠 더 싣고 갈 가계도 없는데
끌고 갈 사람도 없는데
쫓겨나고 싶지 않은
쫓겨나도 갈 곳 없는 천덕꾸러기처럼
오래 엎드려서
가끔 들여다보는 식솔들 뜨뜻한 시선으로도
뿍뿍 바퀴에 바람을 잣고 있다

​바퀴가 있으나 어디론가 가지 못하는 것들은
더 슬프다

(김남극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문학동네 2008)

[감상]
인간이 발명한 것 중 위대한 것이 참 많은데, 바퀴도 그중 하나입니다. 바퀴는 둥근 원 모양으로 최소한의 면적만을 바닥에 댐으로써 자연스럽게 구를 수 있는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바퀴가 먼저인지 수레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바퀴와 수레가 결합함으로써 수레는 물건을 나르는 획기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퀴는 애초에 딱딱한 나무 등으로 만들었는데, 고무 튜브에 공기를 넣어서 탄력성을 갖춤으로써 다시 한번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바퀴는 움직이기에 용이한, 아니 움직이는 것에 최적화된 동적(動的)인 성질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라고 말합니다. 바퀴 있는 것은 “어디론가 가야 하고/ 공기압보다 큰 짐을 실어야 하고/ 집 나서면 헝클어진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퀴 있는 것은 대체로 역마살(驛馬煞)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역마살을 타고났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굴뚝 옆에 세워진 낡은 리어카입니다. 이놈은 하루종일 누워 있기만 합니다. 어둠에 바람이 빠졌다가는 햇살로 바람을 뿍뿍 자아넣는 것을 반복하는데, 엉크런 바큇살은 녹이 슬어 저승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시인이 묘사한 그놈의 표정을 더 들여다볼까요?

“이젠 더 싣고 갈 가계도 없는데
끌고 갈 사람도 없는데
쫓겨나고 싶지 않은
쫓겨나도 갈 곳 없는 천덕꾸러기처럼
오래 엎드려서
가끔 들여다보는 식솔들 뜨뜻한 시선으로도
뿍뿍 바퀴에 바람을 잣고 있다”

시인은 바퀴 있는 것들은 슬프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뒤집습니다.

“​바퀴가 있으나 어디론가 가지 못하는 것들은
더 슬프다”

바퀴는 부처님과 진리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발바닥에도 법륜을 갖고 계시고, 손바닥에도 법륜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직접적으로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던 무불상 시대에 법륜을 부처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바퀴는 둥근 모양이므로 원만성을 상징합니다. 속을 텅 비우고 있으므로 ‘비움’이나 ‘내려놓음’을 상징합니다. 바퀴살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기(緣起)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의 속성이 바퀴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데, “바퀴를 놓고도 진리를 몰라본다”라는 속담도 만들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진실을 바탕으로 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써보겠습니다.

“​바퀴를 보고도 진리에 눈뜨지 못하는 이들은
더 슬프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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