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백암 ‘가을밤 홀로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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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백암 ‘가을밤 홀로 앉아서’
  • 동명 스님
  • 승인 2022.10.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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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가을밤, 지붕 위에 걸린 달
가을밤, 지붕 위에 걸린 달

가을밤 홀로 앉아서(秋夜獨坐)
_백암성총(栢庵性聰, 1631~1700)

가을밤 돌 침상에 앉아 있는데(秋夜坐石牀)
이슬은 차가운데 벌레 소리는 따스해라(露冷虫暄急)
사방은 고요하고 인적도 없을 때(四壁悄無人)
빈 처마로 밝은 달빛이 들어오누나(虗簷明月入)

(『백암집』 栢庵集上)(ABC, H0172 v8, p.442b01)

[감상]
가을밤, 차가운 돌 침상에 앉아보았습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겠지만, 차가운 감촉이 머리를 맑혀주기도 합니다. 이슬은 차갑지만, 가을벌레 소리는 따뜻합니다. 이슬은 가을벌레의 음료수가 되고, 이슬 마시고 힘을 낸 벌레들은 크지 않은 노래를 우리 삶의 배경음악으로 깔아줍니다.

산승 홀로 지키는 산사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오직 선승 혼자서만 적막한 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달님이 살며시 사립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스님, 계십니까?”
스님이 대답합니다.
“아무도 없는데요.”
달님이 말합니다.
“스님, 계셨군요.”
“아무도 없다니까요.”
“잘됐습니다. 아침까지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단언컨대, 달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 달님과 대화를 나누실 테니 행복하십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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