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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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감
  • 관리자
  • 승인 2007.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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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오늘 고등학교 다니는 잉그리드의 딸 크리스틴이 친구와 함께 서운사를 다녀갔다. 그들은 불교에 다한 몇 가지 지문과 함께 학교생활과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가지고 왔다.

잉그리드는 우리 서운사에서 걸러서 10분 정도 거리에 사는 이웃보살님이다. 지난 봄 어느 일요일날 기초교리강좌를 하고 있는데 벨 소리가 나서 나가보았더니 40대의 미국보살이 굿 모닝 스님 하면서 아주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이곳에서는 사전에 전화 없이 불쑥 방문하는 이도 없고 더구나 그렇게 정중하게 합장하면서 인삿말을 하는 사람은 드문 일이라서 의외라 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일 년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시간 봐서 알려주겠다고 하고 일 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나하고 안면이 있는 다른 동네 보살을 만나서 얘기하게 되었는데 그 보살님이 그냥 무조건 찾아가 보라고 했다는 것 이다. 아닌게 아니라 심심치 않게 문의전화가 온다. 하지만 아직 법당을 따로 갖추지 못한 형편이고 내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게 때문에 나는 되도록 서양사람들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잉그리드는 예외였다. 호기심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어느 토요일 하루는 일찌감치 초파일 연등잎 비비는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벨 소리가 나서 나가 보았더니 잉그리드가 서 있었다. 그는 심리치료에 불교교리를 도입한 책이라면서 나에 게 빌려주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것이다. 문득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빛은 방황으로 물 들어 있었고 외로움이 온 몸에 물씬 풍겨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딸과 아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연휴라서 어제 오후에 이혼한 남편집에 갔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혼율이 50%라니까 이혼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황금연휴의 첫날밤 을 혼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내내 자신과 씨름하다가 창문을 두드린 40대의 이혼녀 심정을 이해하는데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친구 없는 외톨박이가 인형 하나 들고 찾아와서 자기도 끼워달라고 호소 하는 가엾은 꼬마친구 같았다. 나는 얼른 안으로 데리고 와서 연등을 비비는 일에 그를 끼 워주었다. 우리 보살님들끼리는 절대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날은 되도록 영어로 대화 함으로써 그를 배려해주었다. 점심공양도 준비하고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저녁 늦도록 좋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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