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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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의 의문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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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똑똑하고 깍쟁이같이 생긴 한 여학생이 몇 번 안면 있는 부모님과 함께 반은 강제로 이곳 서운사를 방문했다.

거사님은 대뜸 그동안 딸이 교회에 빠져 다녔는데 부처님 앞으로 인도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리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그 여학생은 이곳 보스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경험 삼아 서울 강남에 있는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지내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되돌아온 직후였다.

교포 2세 치고는 드물게 한국말 발음이 좋았고 예의가 있었지만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할 뿐 스님들과의 대화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법당에서 부모님들이 절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볼 뿐 십자가 목걸이를 한 그 귀여운 아가씨는 부처님께 아무런 예의도 취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교회에서 보낸 만큼 우상숭배의 상징인 불상과 사주팔자나 봐주는 정도로 알고 있는 스님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는가? 나는 학생 부모님에게 신앙은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 때문에 서로 갈등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했을 뿐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교회에서 세뇌 받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부처님 앞에 절을 하기까지는 8년이란 세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곳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영어와 한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인재를 만난 것이 내심 반가웠다. 솔직히 가끔은 영어통역자가 필요한 터였다.

이후에도 그 학생은 부모님들과 함께 절을 방문했고 여전히 부처님께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세 번쯤 반복되었을 때 나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내 특유의 논리와 설명으로 어느 틈엔가 안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순수한 그 마음을 읽지 못한 채 방문자로서의 무례함과 교육받은 자로서의 무지함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그것은 종교인의 자리에서 아니라 그냥 웬만큼의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될 수 있는 상식 선에서의 대인관계 수준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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